나폴레옹 묻힌 앵발리드서 국가 추도식…'최고의 예우'
시민들 수천명 모여 애도…마크롱 대통령 "우리와 닮은 그를 사랑했다"
"아듀 베벨" 프랑스영화의 전설 벨몽도 마지막길 추모행렬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오랜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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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화의 종주국을 자부하던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로 꼽히던 장폴 벨몽도의 국가추도식은 대배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영화 팬들로 가득 찼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의 '국민배우'였던 벨몽도를 위해 나폴레옹이 잠들어있는 파리 중심가의 복합군사문화시설 앵발리드에서 9일(현지시간) 국가 차원의 추도식을 마련했다.

이 추도식장 안에 자리를 얻지 못한 시민 수천 명은 바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베벨'(벨몽도의 애칭)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일찍부터 모여들었다.

브리지트 라투(66)씨는 프랑스 공영 AFP통신에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면서 "유년 시절부터 함께 해온 오래된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데니스 판데비베레(52)씨는 벨몽도를 기리려고 벨기에에서 건너왔다.

벨기에 공무원이라는 그는 벨몽도와 관련이 있는 기념품을 2천500점 넘게 수집했다고 한다.

"벨몽도는 정말 훌륭한 신사였다"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가 주로 국가적인 대규모 행사를 치르는 앵발리드에서 영화배우를 기리는 의식을 마련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듀 베벨" 프랑스영화의 전설 벨몽도 마지막길 추모행렬
앵발리드에서 망자의 추도식이 열린 건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별세한 2019년이 마지막이었다.

벨몽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정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였던 1950~1970년대에 그는 알랭 들롱과 함께 '시네마 프랑세즈'를 상징하는 남자배우의 대명사였다.

벨몽도는 1950~60년대 프랑스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영화 사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누벨 바그'(Nouvelle vague·'새로운 물결'이라는 뜻) 감독들의 형식을 파괴한 실험적 예술영화는 물론, 액션과 스파이물 등 상업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했다.

이 때문에 벨몽도를 그야말로 전성기 프랑스 영화를 정의한 아이콘으로 보는데 이견이 없다.

특히, 장뤼크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1960년)에서 좀도둑 건달 미셸 포와카르로 열연한 그가 극 중에서 험프리 보가트에 자신을 투영해 입술을 손으로 문지르는 제스처는 세계영화사(史)에 깊이 각인된 한 장면으로 꼽힌다.

벨몽도는 누벨바그 감독들의 남자 '뮤즈'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조각상같이 매끈한 미남이었던 알랭 들롱이 도시적이고 차가운 매력으로 승부했다면, 벨몽도는 그 대척점에서 선 굵은 남성미와 투박하면서도 친근한 이미지로 연령과 세대를 초월해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아듀 베벨" 프랑스영화의 전설 벨몽도 마지막길 추모행렬
본인도 지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보다는 몸을 쓰고 대중적인 영화들에 더 애정이 간다고 말해왔다.

왕년의 아마추어 복서였던 벨몽도는 액션 영화들에서는 대부분 대역 없이 위험한 장면을 마다하지 않고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 추도식에 직접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벨몽도의 대중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벨몽도가 바로 우리와 닮았기 때문에 사랑한다"면서 "당신을 잃는 것은 우리의 일부를 잃는 것"이라고 애도했다.

프랑스 정부와 영화 팬들이 벨몽도의 죽음을 이처럼 대대적으로 기리는 것에는 영화라는 장르가 탄생한 '종주국'이자 한 때 할리우드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였던 자국 영화에 대한 짙은 향수도 배어있다.

프랑스의 유력지 르몽드는 "'베벨'의 죽음은 의기양양했던 프랑스 영화의 종식을 뜻한다"면서 "프랑스 영화의 시대는 돌이킬 수 없이 변했고 벨몽도는 노스탤지어를 남기고 갔다"고 평가했다.

"아듀 베벨" 프랑스영화의 전설 벨몽도 마지막길 추모행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