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노조 변신한 삼성화재 평사원협의회에 "의심스럽다"...단체교섭 중단 가처분
삼성화재 '임금협약에 관한 단체교섭 절차'(임단협)가 결국 중단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3일 삼성화재 노조가 삼성화재를 상대로 낸 단체교섭중지 가처분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화재와 교섭대표 노조로 임단협을 진행 중인 '평사원협의회노동조합'이 제대로 된 노조인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다. 이번 가처분신청이 인용됨에 따라 삼성화재 평사원협의회 노조와 삼성화재가 진행하고 있는 2021년 임금협상은 가처분 신청의 본안소송이 결론이 날 때까지 중단되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재판장 송경근)는 지난 3일 삼성화재노동조합(삼성화재노조)이 삼성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삼성화재)를 상대로 "교섭대표노조인 평사원협의회 노조와 교섭을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으로 신청한 단체교섭중지가처분을 받아들였다.

평사원협의회의 노조 변신, 정체성 의심 받아


평사원협의회노조는 삼성화재 내부에서 1987년부터 사우회로 운영돼 오던 '평사원협의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노조다. 설립 이후 2019년까지 삼성화재와 단체협약과 유사한 '근로조건에 관한 협약'을 체결해 오는 등 사실상 노조 역할을 하던 단체다. 평사원협의회는 삼성그룹이 이전까지 유지해왔던 '무노조 전략'과도 맥이 닿아 있다. 삼성화재 뿐만 아니라 삼성그룹 계열사 중 여러곳에도 이런 형태의 협의회가 존재한다.

평사원협의회는 지난 3월 31일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설립신고증을 교부 받아 노동조합으로 모습을 변경했다. 노동청으로부터 절차상 미흡을 이유로 한차례 보완 요구를 받기는 했지만, 평사원협의회 노조는 설립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조합원 숫자를 늘리며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차지했다. 사실상 이전부터 노조처럼 활동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전환이 용이했다.

이에 제2노조인 삼성화재노조가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화재노조는 "평사원협의회노조의 전신인 평사원협의회는 삼성화재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으며 회사를 위해 활동해 왔다"며 "평사원협의회노조는 어용노조이므로 삼성화재는 교섭을 중단해야 한다"고 가처분신청을 냈다. 노조 설립이나 서울지방노동청의 요구에 따른 규약 개정 과정에서 제대로된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는 등 절차적인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함께 펼쳤다. 삼성화재노조는 지난 7월 평사원협의회노조를 상대로 노동조합 설립무효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법원은 삼성화재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평사원협의회노조가 자주성과 독립성이 있는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평사원협의회의 정체성을 의심했다. 법원은 "평사원협의회는 회사를 위해 노조 대신 구성된 조직으로 삼성화재 내 '진성노조' 설립을 저지하기 위한 조직이며, 운영과 관련해서도 회사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2년 공개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발표한 '비노조 경영' 방침을 구체화한 S그룹 노사문건을 살펴 보면 '평사원협의회를 유사시 친사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육성'한다고 돼 있다"며 "삼성화재노조 설립 전까지 삼성그룹 내에 진정한 노동조합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법원은 평사원협의회를 평사원협의회노조가 계승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평사원협의회노조 대표가 '삼성화재 임직원들에게 익숙한 기존 평사원협의회의 직급이나 조직, 제도를 그대로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고, 실제로 의사결정이나 집행기관의 인적 구성과 구체적인 직함까지도 동일하다"며 "평사원협의회노조가 궤도에 오르자 비로소 평사원협의회가 해산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삼성화재와 평사원협의회 노조 간 단체교섭을 금지할 필요성이 소명된다"며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 노조 설립 절차 지적..."투표 절차 제대로 안거쳐"


재판부는 노조 설립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조합법에서는 노조 규약을 만들거나 변경할 때 총회에서 재적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조합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결의하도록 하고 있다. 평사원협의회노조는 3월 26일 설립과 이후 규양변경 당시 조합원 14명 전원이 카카오톡을 통해 임시총회를 열고 적법하게 결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평사원협의회노조는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임시총회를 열지 않았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또 "3월 22일 기준으로 조합 가입자수가 135명이고 총회 개최 전일에는 1195명, 당일에는 1290명에 달하는만큼, 14명만 참여해 열린 임시총회 결의는 노조법에서 정한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카카오톡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서 한 규약 변경 결의도 부적법하다고 봤다.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14인 조합원이 자필로 규약변경에 동의한다는 문구를 기재한 서류를 제출했지만 이는 적법한 투표로 보기 어렵다"며 "서울지방노동청의 설립신고 수리 및 노동조합 설립은 무효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카카오톡이나 메신저 형식의 총회라고 해도 투표 절차를 제대로 거쳐야 한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평사원협의회노조는 "2021년 7월에 온라인 총회를 열어 2007명 중 1680명의 찬성으로 규약 변경을 소급해서 인정(추인)했다"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규약 변경 행위 자체가 무효인만큼, 소급해서 유효로 만들수 없다는 판단이다.

삼성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평사원협의회가 노조로 활동을 해 온지 오래"라며 "현재 평사원협의회가 노조로 전환된 곳은 삼성화재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과거 비노조 경영 전략이 2021년에도 발목을 잡은 모양새"라며 "반대로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평사원협의회노조 설립이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봤던만큼 법원 본안판단을 더 지켜봐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