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로 판명난 '보물선' 돈스코이호. /사진=한경 DB
사기로 판명난 '보물선' 돈스코이호. /사진=한경 DB
'보물선' 돈스코이호 사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150조원 규모의 금괴가 실린 돈스코이호를 울릉도 인근에서 발견해 금괴를 인양하려 한다며 투자자들 이목을 끌었던 사건이다. 당시 2018년 7월 주식시장에선 '보물선 테마주'라는 명칭과 함께 일부 종목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울릉도 근해를 항해하다 침몰한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 사건은 해저 보물선 발굴을 미끼로 한 전형적인 투자 사기다. 사기행각을 벌인 신일해양기술(옛 신일그룹) 주요 관계자들은 무더기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당시 테마주로 묶였던 코스닥 상장사 J사는 약 2주만에 주가가 124% 넘게 뛰었다.

보물선 이슈가 한창일 때 신일그룹은 보물선 인양과 함께 J사를 인수 한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주식시장에 전해지면서 J사가 보물선 테마주로 분류됐다. 하지만 사기 행각이 드러남과 동시에 인수계약이 취소되면서 4000원대 넘게 치솟던 주가는 6거래일 만에 다시 1000원대로 주저 앉았다.

잘 고른 테마주…알고보니 양날의 검?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테마주를 양날의 검이라고 부른다. 제 아무리 잘 고른 테마주라고 무턱대고 따라가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일부 적자기업들이 보물선 등과 같은 이목을 끄는 테마에 합류하면, 장미빛 공시만 믿고 투자했다 낭패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테마주에 투자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주식시장의 트렌드를 알기 위해선 테마주를 참고할 필요는 있다. 작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주식시장에선 바이오, 수소전기, 메타버스 등의 업종이 떠오르고 있다. 최근 일진하이솔루스와 맥스트가 상장과 동시에 '따상'(공모가 두 배 상장 후 상한가 진입)을 기록한 것도, 이들 종목이 '핫'한 테마에 엮여있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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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은 테마주를 박스권에서 손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단기 투자전략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이전 국내 증시가 몇년간 박스권에 갇히면서 실적과 관련없이 움직이는 테마주들에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렸다.

테마주는 복잡한 분석이 필요 없는데다 관련 종목으로 엮이기만 해도 폭등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하지만 관련 이슈가 사그라들면 주가 하락폭도 빠른 만큼, 손실을 볼 위험이 크다는 단점도 있다.

매출 '제로'인 테마주에 묶여…사례 살펴보니

문제는 일부 종목들이 실적 등 펀더멘털과 관련없는 소식에 주가가 요동을 친다는 점이다. 또한 주가 부진의 늪을 빠져나오는 모멘텀을 업황이나 실적이 아닌 테마에 의지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O사는 국내 증시에서 대표적인 대마(마리화나) 테마주로 분류됐다. 작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려는 그의 선거 공약이 O사 주가에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O사는 마리화나 보단 디스플레이용 소재 제조기업이다. 매출에서 대마 관련 의약품 비중이 제로(0%)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마리화나 관련 이슈에 따른 주가 변동성과는 무관하게 소재사업을 바탕으로 꾸준한 실적을 내면서 내실있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 소식으로 주목을 받은 종목도 있다. 작년 D사는 풍력발전기 생산업체로 알려지면서 주가가 급등했지만 이 기업 역시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기업에 가깝다. 매출에서 풍력발전기의 비중이 제로(0%)이기 때문이다. D사의 올해 상반기 풍력발전 부문 매출액은 170만원에 그쳤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바이오업체인 N사는 면역세포 치료제에 대해 코로나19 '응급임상'에 나선다고 자료를 낸 적이 있다. 시장에선 코로나19 신약을 개발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응급임상'은 흔히 알고 있는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과는 거리가 멀다. 응급임상은 생명이 위급하거나 대체 치료수단이 없는 응급환자 치료를 위해 허가되지 않은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별도로 승인받아 투약하는 제도다. 환자의 주치의가 식약처에 신청해서 개인별로 진행된다.

회사측 발표 내용만 보면 투자자들이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 N사가 마치 코로나19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테마주도 옥석가리기 필요…어떤 점 확인해야할까

이처럼 너도나도 주식시장에서 유행하는 테마주로 편입되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지만 섣부른 투자는 금물이다. 특히 바이오 테마에 대해선 주의가 필요하다. 신약 개발 관련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지 검증이 어려운 데다 성공 여부가 극히 불확실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엔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식시장과 테마주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역사를 돌아보면 주식시장엔 항상 테마가 있었다.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이었던 1970년대에는 건설주가 테마를 형성하며 연일 상한가를 달렸다. 페인트를 만드는 업체인 건설화학이 이름에 '건설'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건설주와 함께 오르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2008년에는 해외자원개발 관련 종목이 주식시장의 대표 테마주였다. 정부가 해외자원개발 정책을 추진하면서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하늘 모르고 치솟았기 때문이다. 당시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나오기도 전에 상한가까지 치솟는 종목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재무구조만 악화되면서 대부분 기업들의 주가는 결국 폭락했다.

일부 종목들은 관련 테마와 전혀 상관없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오름세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이슈가 터지면 주식시장에서 굴비 엮는듯한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관련없는 종목들이 테마주로 둔갑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테마와 관련된 사업을 영위하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매년 공시하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사업 부문별 실적을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업목적에만 추가해놓고 실제로 사업은 하지 않는 종목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테마주에 편승하기 위해 일부 종목들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의 자료 배포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투자자들은 공시나 사업보고서를 통해 관련 사업을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지, 나아가 수익이 발생하는지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적이 뒷받침 되지 않은 상황에서 테마주로 주가가 오르는 종목에 대해선 투자를 주의해야 한다"면서 "본질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오른 주가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