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극복하며 발전한 독일…우리의 통일 좌표는?

독일만큼 드라마틱한 역사를 보여주는 국가도 흔치 않다.

1871년 통일 전까지 독일은 유럽의 변방이었지만,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해양 세력을 대표하는 영국과 오랫동안 자웅을 겨루던 유럽대륙 국가는 프랑스였지만, 통일 이후에는 독일이 부상했다.

영국 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주저 '제국의 시대'를 보면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경제, 군사력 등에서 영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부침을 반복했다.

히틀러의 부상, 유럽 대륙 제패, 2차 세계대전 후 폐망, 라인강의 기적을 거쳐 현재는 유럽연합(EU)의 중추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50년 동안 독일은 팽창과 수축을 거듭했고, 독일인은 극우(파시즘)와 극좌(적군파)를 넘나들며 '생각의 좌표'를 계속해서 수정해 나갔다.

연합뉴스 베를린 특파원으로 독일 사회를 체험한 이광빈 기자와 재독 정치철학자 이진 독일정치+문화연구소장이 함께 쓴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이은북)은 이처럼 다이내믹한 역동성을 보인 독일 사회를 통해 한국 사회를 바라본 책이다.

이들 저자의 서치라이트는 독일 사회를 향하고 있지만, 그 너머에는 '압축성장', '분단' 등의 측면에서 독일과 유사한 상황을 보인 한국 사회를 명확하게 조준하고 있다.

'힙베를린, 갈등의 역설' 출간…힙한반도 열쇠찾기
저자들은 냉전 시대 서독과 동독의 전단 보내기 경쟁을 분석하면서 남북의 삐라 살포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동독 문제를 둘러싸고 서독 내에서 촉발된 '서서 갈등'을 연구하면서 북한 문제를 둘러싼 남한 내 이견, 즉 '남·남 갈등'을 대입해본다.

저자들은 서독과 동독의 분단 경쟁을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헐거운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역사', '문화', '국민 의식' 등 다양한 잣대를 들이대며 정교하게 양 사회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예컨대 저자들은 동서독 전단 보내기 경쟁과 관련해서 "분단기 동서독은 전단 정쟁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며 "서독은 냉전을 상징하는 '삐라' 대신 점진적이지만 지속적인 교류를 추구했다"고 밝힌다.

특히 이 원칙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기에 이후 서독에는 일방적 소통도, 비생산적인 논쟁도 자연스레 줄었다"고 평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 논란 속에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까지 제정했지만, 그 이상의 단계로까지는 진입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통일에 대한 접근법도 흥미롭다.

특히 동독에 대한 서독의 무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을 때, 갑작스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점이 눈길을 끈다.

저자들이 만난 안네 쾰러 전 인프라테스트 설문조사 프로젝트 총책임자의 인터뷰를 보면, "동독 주민들의 80~90%는 서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반면, 서독 주민들은 15~20% 정도만 동독에 관심을 두었는데, 그마저도 탈동독민 이거나 동독에 친척에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 현재, 우리에게도 되새김질할 만한 대목이다.

'힙베를린, 갈등의 역설' 출간…힙한반도 열쇠찾기
저자들의 관심사는 서독과 동독의 경쟁 체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 이후 '2등 시민론'이 고개를 들고, 무슬림 난민의 물결 속에 민족주의와 극우파가 한때 득세하기도 했던 독일의 현주소도 면밀하게 살핀다.

특히 극한 사회적 갈등 속에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저자들은 "힙 베를린, 갈등의 역설'은 사회적 갈등 문제를 다룬 사회학적 책이자 통일문제와 연관된 책이기도 하다"며 "갈등이 즐거울 수는 없지만,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고 조정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공존을 위한 '즐거운 갈등'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분단기 서독, 현실의 독일에서 찾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신동방정책, 남북 체육 교류, 독일로 연수 온 김일성대 학생들과의 만남, 베를린 소녀상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 식민지 문제에 대처하는 독일인의 자세, 난민 정책의 난항, 극우세력의 부상, '차이'에 대한 인정으로 국제도시로 떠오른 베를린 등 다양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책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한명숙·김황식 전 총리,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추천사를 비롯해 마르쿠스 멕켈 동독 마지막 외무장관, 안네 쾰러 전 인프라테스트 설문조사 프로젝트 총책임자, 하르트무트 코시크 기독사회당 7선 의원, 데틀레프 퀸 전 독일문제연구소장 등의 인터뷰도 수록했다.

260쪽. 2만5천원.
'힙베를린, 갈등의 역설' 출간…힙한반도 열쇠찾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