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경기 성남 본사 모습. 사진=한경DB
네이버의 경기 성남 본사 모습. 사진=한경DB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는 미래 먹거리로 늘 헬스케어사업을 강조했다. 2018년 한 행사에서 그는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미국의사협회, 보험회사 등과 데이터를 공유해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했다”며 “네이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헬스케어사업의 핵심은 데이터이고, 이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IT기업이 적임자란 얘기다. 의료데이터기업 이지케어텍에 대한 투자와 협업은 이 전 대표가 말한 IT기업 비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의료 데이터 확보 사활 건 네이버

네이버가 이지케어텍에 투자하는 돈은 약 300억원이다. 절대금액은 그리 크지 않지만 투자를 완료하면 2대 주주로 올라설 수 있는 규모다.
네이버 "헬스케어 핵심은 데이터, 우리가 전문"
네이버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클라우드 전자의무기록(EMR) 사업을 본격 확장할 계획이다. 클라우드에 쌓인 의료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의료 데이터를 모으면 다양한 헬스케어사업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글로벌 IT기업 아마존은 의료 데이터로 학습한 인공지능(AI)으로 원격진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애플은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적용된 웨어러블 기기로 심전도, 혈중 산소 수치, 혈당 수치 등을 확인하는 서비스를 한다.

이지케어텍의 클라우드 EMR 대상 사업자는 중소형 병원이다. 대부분의 대형 병원은 서버를 자체 구축해 EMR 시스템을 가동하고, 데이터를 독점한다. 중소형 병원은 비용이 저렴하고 효율적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도 최근 2~3년간 대형 병원을 상대로 클라우드를 통한 데이터 확보에 나섰지만 분당서울대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등 소수 병원만을 파트너로 맞았을 뿐이다.

이지케어텍은 지난해 초부터 클라우드 EMR사업을 시작해 국내 10여 개 병원에서 클라우드 EMR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클라우드의 기술력이 더해진다면 병원 고객 확보는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 규모도 보장돼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대형 종합병원은 343개이고 확보한 병상은 14만9282개인 데 비해 병원·의원으로 분류된 규모가 작은 의료시설은 3만2289개, 병상은 23만6248개에 달한다.

IT업계 관계자는 “이지케어텍은 2000년대 초반부터 EMR 시스템 관리 노하우를 꾸준히 쌓으며 해외에 진출했을 만큼 업력이 높은 업체”라며 “네이버 클라우드 기술이 뒷받침되면 클라우드 EMR사업은 날개를 달 것”이라고 말했다.

IT社 헬스케어 진출은 글로벌 트렌드

네이버는 헬스케어사업을 확장할 기반을 갖추고 있다. 2019년 일본 자회사 라인은 소니 계열 의료플랫폼업체 M3와 합작법인 라인헬스케어를 설립하고 원격의료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초 로봇수술 전문가 나군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를 헬스케어연구소장으로 영입하며 네이버 본사도 원격의료 기술 고도화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헬스케어연구소는 사내 병원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네이버 헬스케어사업의 테스트베드로도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헬스케어 분야 규제는 완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정부가 ‘한국판 뉴딜’ 발표에서 비대면 의료 산업을 육성 과제로 제시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및 제4차 감염병관리위원회 심의·의결에 따라 ‘한시적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전격적인 원격의료는 금지돼 있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지만, 규제는 점차 완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구민기/차준호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