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여전히 모호…고용부 가이드라인도 도움 안 될 것"
지난달 17일 입법예고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의 내용이 불명확해서 내년 1월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기업들이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법 입법예고 기간 중에 노사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한 토론회에서다
고용부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 주제는 중대재해법 상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에 관한 것으로, 토론회는 19일에도 예정돼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사를 불문하고 ‘규정의 모호함’을 지적하는 내용이 발표의 주를 이뤘다. 특히 경영계를 중심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상 형사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시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기업의 조직과 업무 분장 형태가 다양해 조직 별로 각각 대표이사를 두는 경우도 많다”며 “누가 경영책임자인지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판단을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용부가 하반기 중 내놓을 예정인 가이드라인도 큰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회의적인 의견도 내놨다. 이 변호사는 “좀 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다지만 고용부가 법원의 판단까지 예상하기는 어려워 가이드라인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도 “시행령에서 경영책임자의 의무인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대해서 ‘충실하게 수행’, ‘적정한 예산’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것만 보면 기업들이 무엇을 지켜야 처벌을 면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며 “감독기관의 자의적인 법 집행도 우려된다”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법 시행에 대비해 준비할 기간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나왔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내년 1월 시행까지 시일이 촉박해 중소기업은 사실상 준비가 어렵다”며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점검을 받으라지만, 192개에 불과한 전문기관이 5만개 넘는 사업장을 소화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노동계도 불만을 표시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 중지 등 대응절차를 마련하라는 규정이 있는데, 급박한 위험의 경우 고용부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크다”며 규정이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도 “하청이나 특수고용노동자 등 종사자 전체를 대상으로 일부 시행령이 적용되는 것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며 “경영책임자에게도 ‘관리체계 마련’이라는 의무 부과에 그치지 않고 집행을 직접적으로 하는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엔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의 체계적 지위와 주요 내용’을 주제로 발제에 나섰고, 19일엔 ‘직업성 질병’으로 주제를 이상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제에 나선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