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현대차
사진=현대차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BMW의 M, 아우디의 S 및 RS….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인정받는 고성능차 브랜드다.

업계에서는 제대로 된 고성능 브랜드를 가진 자동차업체를 높게 평가한다. 문제는 고성능 브랜드를 시장에서 성공시키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고성능 자동차 특성상 성능을 인정받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일반 자동차는 가격과 디자인, 서비스 등 다른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고성능차는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능이 뛰어난 차를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다.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고성능차’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기준으로는 세계 5위 수준이지만,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현대자동차그룹도 이런 문제에 직면했다. 현대차는 스쿠프, 티뷰론, 투스카니, 제네시스 쿠페 등 스포츠 모델을 다수 내놓았지만 이 모델들을 고성능차 브랜드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제대로 된 고성능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현대차는 2017년 고성능 브랜드 N의 첫 양산차인 i30N을 공개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N의 이름을 달고 시장에 나온 모델은 벌써 6종류가 됐다.

아직까지 폭발적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높은 벽의 고성능차 시장에 제대로 된 도전장을 던졌고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이 어떻게 시장에 안착했을까.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 꾸준하게 투자를 이어갔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실제 차량이 나오기 전부터 이름 알리기에 돌입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상황 1 고성능 브랜드 중요성↑
도전 1 43페이지 보고서로 경영진 설득

현대차는 과거 티뷰론, 엑센트 등의 모델을 앞세워 모터스포츠 대회 중 하나인 WRC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회성 참가에 가까웠고, 이를 활용한 마케팅도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모터스포츠를 단순히 홍보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내부적으로 제기됐다. 첨단 레이싱 기술을 개발해 이를 양산차에 활용하고, 고성능 브랜드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브랜드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이유다.

자동차업계 전체적으로도 고성능 브랜드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졌다. 양산차 기술력은 상향평준화되어 갔고, 차별화한 브랜드를 만들려면 고성능차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로 승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대차의 최규헌 N브랜드매니지먼트실 상무(현지 직급 기준)를 비롯한 일부 임직원들은 모터스포츠 재진출 및 고성능 브랜드 추진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최 상무는 회사 경영진을 1년 넘게 설득했고, 결국 새 도전을 해보자는 결정을 얻어냈다. 현대차는 모터스포츠를 전담하고, 연구개발본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별도 조직을 만들었다.

2012년엔 독일 알체나우에 현대모터스포츠 법인을 설립했고, 2013년 현대 모터스포츠 월드랠리팀을 창단했다. 이 팀은 2014년 1월 몬테카를로 랠리를 시작으로 WRC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모터스포츠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하고 고성능차를 만드는 건 다른 문제였다. 고성능차에 대한 기술 축적이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고성능차 개발 인력도 많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엔 박준우 N브랜드매니지먼트 팀장 등이 나섰다. 박 팀장은 43페이지 분량의 고성능차 중장기 전략 방향 보고서를 경영진에 보고했고, 경영진은 다양한 내부 검토 끝에 이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차는 방향을 결정한 뒤부터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2017년 고성능 N 차량을 내놓는다는 목표를 정했고, 이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연구개발본부 내 고성능차 관련 조직을 완전히 재정비했고, BMW M에서 연구개발을 총괄했던 알버트 비어만 사장도 영입했다.

상황 2 브랜드 인지도 싸움 격화
도전 2 과감한 선행마케팅에 총력

일반적으로 새 브랜드를 시장에 공개하는 계기는 첫 제품 출시다. 하지만 현대차의 판단은 달랐다. 브랜드의 방향성이 이미 정해졌고, 그 방향성을 제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브랜드의 이름을 고객들에게 심어주고, 고객이 그 브랜드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한다면 과감한 선행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201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10년 후 N브랜드의 비전을 상징하는 콘셉트카를 활용해 N브랜드를 처음 공개했다.

당시 선보인 콘셉트카의 이름은 N2025 비전 그란투리스모. 2025년 N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 만들었다. 현대차가 가진 또다른 강점인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결합한 모습이었다.

내부적으로도 우려는 많았다. 아직 실제 차량이 없는 브랜드를 공개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었다.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고성능차가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반발도 많았다.

당시 일부 임원들은 “만화 같은 콘셉트카를 선보이면 안 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일반적으로 콘셉트카는 한두차례 활용되고 폐기된다. N2025 비전 그란투리스모는 달랐다.

10년 뒤의 비전을 선보인 콘셉트카이다보니 6년째 활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20차례 이상의 모터쇼에 전시됐을 정도다. 현대차 내부에서 ‘지속가능한 콘셉트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브랜드 공개 이후 첫 차량 출시까지 남은 시간은 2년. 마음이 급해진 박준우 팀장은 아예 첫 차량이 나올 독일법인으로 가겠다고 지원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독일법인의 현지 직원들은 “독일은 고성능차의 본고장인데, 현대차가 처음 내놓는 고성능차는 한 대도 팔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박준우 팀장을 비롯한 국내 N준비팀의 생각은 달랐다. 2년 동안 얼마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유럽에서 가장 혹독하다는 내구레이스로 꼽히는 ‘뉘르부르크링 24’에 출전해 N의 준비 현황을 잠재적 고객들에게 공유했다. 고객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혹독한 뉘르부르크링에서 최종 양산 테스트’라는 스토리를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신차를 발표하지 않은 시점이라 기존 i30 모델에 N전용 엔진과 변속기를 장착한 차량에 뉘르부르크링을 완주하는 방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i30N의 첫번째 물량(100대)은 온라인 판매 이틀 만에 다 소진됐다. 첫 물량 100대를 파는 방식도 파격적이었다. 첫 100대를 구매한 고객을 뉘르부르크링에 초대해 함께 축하했고, 같이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는 이벤트를 열었다.

비어만 사장은 자신의 휴가를 취소하고 이 행사에 참여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100명의 고객은 잊지 못할 추억을 얻게됐고, 주변에 N브랜드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사진=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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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3 친환경차 시대가 왔다
도전 3 현재가 아닌 미래를 봤다

현대차는 올해 3 종류의 N 모델을 내놓았다. 유럽 전략모델인 i20N, 코나N, 아반떼N이 그 주인공이다.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예상 밖 반응도 나온다.

전기차 시대가 오는데, 내연기관 고성능차를 내놓는 게 맞느냐는 반응이다. 현대차 N브랜드의 전략 및 마케팅 담당자에게 이 반응은 매우 중요하다.

전기차 시대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답하기 힘든 질문이고, 준비를 해놓은 상태라면 오히려 고마운 지적이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중장기 전략 수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현대차 N브랜드의 상황은 후자다.

N브랜드는 2026년까지 상세 실행 전략 로드맵을 수립했다. 그 계획을 하나씩 공개하면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N브랜드는 출범할 때부터 10년 뒤의 비전을 공유했다.

현대차는 N브랜드 차량을 내놓을 때마다, 미래 방향성을 조금씩 공개하고 있다. 최근엔 전기 고성능차를 넘어선 수소와 전기 기술을 결합한 고성능차에 대한 단서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달 나온 아반떼N은 N의 여섯번째 모델이자, 내연기관 시대의 정점을 찍는 모델이다. 전기차 기반 고성능 N으로의 전환에 가교 역할을 할 모델이기도 하다. 현대차는 이 점을 최대한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아반떼N을 공개하면서 차량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늘어놓기 보다 방향성을 강조했다. 아반떼N 티저(맛보기) 영상을 내놓을 때 차량 이미지도 쓰지 않은 게 대표적 사례다. 실루엣과 43개의 약어, 가속음향 만으로 티저를 기획했다.

업계에서 “용어와 사운드만으로 마케팅을 한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성능 브랜드라는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마케팅에 집중했다”며 “단순히 차량의 성능을 강조하기 보다 방향성과 미래를 보는 마케팅을 선보이는 전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소비자들은 저마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바나나를 떠올리면 ‘노란색, 껍질이 미끄럽다, 쉽게 상한다…’ 등의 연상이 떠오르듯이 브랜드에 대해서도 다양한 연상들을 떠올린다.

마케팅에서는 이를 “브랜드 스키마(Schema)”라고 부른다. 지금 당장 여러분 주변에 있는 아무 브랜드나 떠올려보자. 그것은 스마트폰일 수도 있고, 노트북일 수도, 음료수일 수도, 혹은 여러분이 위치한 어떤 유통매장일 수도 있다.

그 브랜드를 떠올리면 어떤 연상들이 함께 떠오르는가? 특정한 색깔? 제품의 독특한 특징? 어떤 사람? 그 브랜드와 관련해 무엇이든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브랜드 스키마이다.

즉 브랜드 스키마란, “특정 브랜드에 대해 떠오르는 연상(association)들의 집합”이다. 브랜드 스키마를 파악하면 소비자들이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케팅은 제품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perception)의 싸움’이라 하지 않았던가. 결국 마케터의 역할은 자사 브랜드에 대해 ‘차별적이고 긍정적인 인식’, 다시 말해 좋은 브랜드 스키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고성능 브랜드 N 출시 역시 현대차만의 브랜드 스키마를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스키마는 주로 “경제적, 실용적” 등의 이미지로 채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의 기술력이 성장하고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독일, 일본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과 동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즉, 현대차도 이제 ‘성능’을 더욱 강화하는 브랜드 스키마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이를 위해 i30N, 코나N, 아반떼N 출시, BMW 출신의 알버트 비어만 영입, N2025 비전 그란투리스모, 뉘르부르크링 24시 출전 등과 같이 고성능을 강조하는 일련의 마케팅 활동은 기존의 현대차 브랜드 스키마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고성능 자동차의 경우 단지 기술력만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들이 고성능 자동차에 고가격을 지불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단지 실용적 가치(utility value)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멋진 이미지, 혹은 고급스러운 이미지 등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 역시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그 브랜드를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현대자동차가 출시하는 N 모델의 방향성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대자동차는 현재 코나, 아반떼 등 중저가 모델을 중심으로 N 모델을 먼저 출시하고 있는데, 브랜드의 상징적 가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좀 더 상위 모델에서 N 모델을 출시하고, 이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일반적으로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필자 또한 자동차, 특히 고성능차에 대해서는 무지하다시피 하다.

그래서 현대차 아반떼N 광고를 찾아서 봤다. 광고에 등장한 아반떼N은 그동안 봐왔던 아반떼가 아니었다.

아반떼가 스포츠카였나 하는 생각이 들며 고성능 브랜드 N이 붙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고성능 브랜드의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라면 아마 여러 자동차 회사의 고성능 브랜드를 비교하며 차이점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소비자들은 현대차라는 상위 브랜드(마스터 브랜드)에 주목한다. 현대차 브랜드가 숲이라면, 그 숲에 있는 나무들은 서브 브랜드들이며 고성능 브랜드 ‘N’ 또한 그 숲에 있는 나무 중 한 그루이다.

제네시스를 비롯한 현대차의 서브 브랜드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소비자들의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다.

여기에 고성능 브랜드 N이 본격적으로 가세하며 N이라는 나무가 현대차라는 숲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기사에 따르면, 브랜드 N에는 두 가지 핵심 포인트가 있다. 첫째, 장기적 안목과 비전이다. 현대차는 여러 어려움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여 브랜드 N을 성장시켰다. 그런 추진력과 꾸준함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됐다.

둘째, 과감한 선행 마케팅이다. 실제 차량이 없는 브랜드를 공개하려면 부담과 위험이 있었을텐데 과감하게 도전했다. 사실 이런 도전은 소비자를 설레게 한다. 앞으로 이런 차가 나오는구나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으며 그 기대가 현실이 된 것을 경험한 것이다.

장기적 비전과 과감한 도전으로 요약되는 브랜드 N이 현대차라는 숲을 얼마나 더 돋보이게 만들지 주목된다.

최근에 우연히 숲을 돋보이게 하는 광고를 봤다. ‘현대차X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광고였다. 4족 보행 로봇이 방탄소년단과 함께 등장했다.

현대차가 지향하는 미래 모빌리티의 비전을 엿볼 수 있었다. 선행 마케팅에 언젠가 우리 앞에 우뚝 설 또 다른 나무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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