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거상잡의' 번역 자료집 출간
19세기 사대부는 삼년상 기간에 어떻게 지냈을까
"무릇 자식으로서 갑자기 큰 슬픔을 당하면 애통함에 급박하여 친히 여러 절차를 점검할 수 없다.

심지어 상장(喪葬)은 행사를 마치면 곧 잊어버려, 평생토록 유감으로 남는다.

"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고서 '거상잡의'(居喪雜儀)는 이렇게 시작한다.

조선 후기 인물인 저자는 상중에 행한 여러 의례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거상잡의를 번역하고, 그동안 명확히 파악되지 않은 저자와 작성 연대를 상세하게 분석한 자료집 '19세기 경주김씨 집안의 삼년상 일지 - 거상잡의(居喪雜儀)'를 펴냈다고 9일 밝혔다.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과장이 번역과 해제 작성을 하고, 이범직 건국대 명예교수와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감수를 맡았다.

19세기 사대부는 삼년상 기간에 어떻게 지냈을까
해제에 따르면 거상잡의를 쓴 사람은 경주김씨 계림군파 김준영(1817∼?)이다.

그는 생원시에 합격해 연기현감 등을 지냈다.

김준영은 부친 김규응(1779∼1846)이 세상을 떠나자 한양에 있는 집과 화성 묘소를 오가며 상을 치렀고, 1846년 8월 12일부터 1848년 11월 5일까지 기록을 남겼다.

이어 어머니 한산이씨가 눈을 감자 또다시 삼년상을 행하면서 1859년 1월 21일부터 1861년 4월 5일까지 글을 썼다.

김준영은 삼년상을 36개월이 아닌 28개월 동안 치렀다.

옛날 예법은 상중에 조상 제사를 생략하도록 했으나, 그는 부모상을 치르면서도 제사 모시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만 집안 아이들이 병에 걸리면 제사를 올리지 않기도 했다.

상례 기간이 길다 보니 삼년상 중에 또 다른 죽음이 찾아오기도 했다.

김준영은 둘째 딸이 죽자 부친상을 중시해 별다른 의례 없이 장례를 했고, 당숙모의 부음을 듣고는 당숙 집에 찾아갔다가 돌아와 다시 상복을 입었다.

아울러 부모 상중에는 성(姓)이 다른 이웃집에서 누가 사망하더라도 조문하지 않는 예법이 있었는데, 김준영은 한밤중에 몰래 은혜를 입은 집에 찾아가 곡을 한 뒤 실례였음을 깨달았다.

거상잡의에는 또 다른 기록물인 '거우일기'(居憂日記)가 부록으로 실렸다.

거우일기는 안주목사 이창임(1730∼1775)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이선정(1759∼1814)이 상장례(喪葬禮)를 치르며 1775년 7월 22일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남긴 일지다.

상례용품 목록과 참여자 명단, 부의(賻儀)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됐다.

최 과장은 "거상잡의는 19세기 사대부가 실제로 행한 삼년상 관행과 예서에는 나오지 않는 예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19세기 사대부는 삼년상 기간에 어떻게 지냈을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