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19년 10월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전기차 ‘아이오닉5’를 앞에 두고 ‘미래 모빌리티 협업 생태계 전략’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한경DB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19년 10월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전기차 ‘아이오닉5’를 앞에 두고 ‘미래 모빌리티 협업 생태계 전략’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한경DB
국내 대표 완성차 기업과 배터리 기업이 손잡고 아시아와 미래 전기차 시장 주도권 확보에 시동을 걸었다.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인도네시아에 1조원 넘는 규모의 투자를 통해 배터리셀 합작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6월 만나 배터리 분야 협력을 논의한 지 1년여 만에 본격 추진되는 것이다.

1조1700억 투자해 배터리셀 공장 세운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인도네시아에 연산 1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셀 합작공장 설립을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와 투자협약을 체결했다고 29일 발표했다.

양사는 전날 서울 여의도 LG에너지솔루션 본사에서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과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인도네시아 투자부 바흐릴 라하달리아(Bahlil Lahadalia) 장관이 참여한 가운데 협약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라하달리아 장관은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 바흐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투자부 장관(뒷줄 왼쪽 화면), 인도네시아 국영배터리 코퍼레이션(IBC) 토토 누그로호가 배터리셀 합작공장 설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 바흐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투자부 장관(뒷줄 왼쪽 화면), 인도네시아 국영배터리 코퍼레이션(IBC) 토토 누그로호가 배터리셀 합작공장 설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이번 협약 체결에 앞서 최근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셀 합작공장 설립 계약을 체결했으며, 인도네시아 정부와의 투자협약을 통해 양측은 합작공장 설립을 위해 약 11억달러(약 1조17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합작공장에 대한 지분은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각각 50%씩 보유한다.

양사는 오는 3분기 중으로 합작법인 설립을 완료한 뒤 4분기부터 공장 착공에 나설 예정이다. 오는 2023년 상반기 완공 이후 2024년 배터리 셀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배터리셀 합작공장이 들어설 지역은 인도네시아 산업 중심지인 카라왕(Karawang Regency)이다. 합작공장이 들어설 산업단지는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 중심부에서 남동쪽으로 약 65km 거리에 있다. 공항·항구·고속도로 등 주요 교통망이 구축돼 있어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다.

합작공장은 총 33만㎡의 부지에 조성되며 연간 전기차 배터리 약 15만대분 이상인 1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셀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배터리셀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신기술을 적용해 고함량 니켈(N)과 코발트(C), 망간(M), 출력을 높여주고 화학적 불안정성을 낮춰줄 수 있는 알루미늄(A)을 추가한 고성능 NCMA 리튬이온 제품이다.

이 배터리셀은 오는 2024년부터 생산되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E-GMP가 적용된 전용 전기차를 비롯해 향후 개발될 전기차에 탑재될 예정이다.

왜 인도네시아인가

양사가 인도네시아에 합작공장을 세우는 이유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최근 전기차 산업 육성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어 각종 인센티브 확보에 유리한 데다 니켈, 코발트 등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광물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 매장량과 채굴량 모두 세계 1위 국가다. 연간 100만대 규모의 아세안 최대 자동차 시장이기도 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전기차 관련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요충지로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

원자재 공급부터 배터리셀 제조, 완성차 생산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대차로선 정부의 인센티브까지 더해지면 전기차 가격 경쟁력 확보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2019년 8월 전기차 산업 육성과 보급 확대를 위한 대통령령 공포를 통해 전기차 사치세 면제 등 각종 인센티브 제공 기준이 되는 부품 현지화율을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하고 있다. 또 이달 초 하이브리드 모델에 대한 사치세율을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자동차 세제 관련 법안을 최종 승인, 전기차 시장 확대 의지를 키우고 있다.

이런 점을 종합 고려할 때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합작공장은 인도네시아 시장은 물론 글로벌 전기차 시장까지 적극 공략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전망이다. 특히 아태 권역 전체 시장 공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아세안 시장은 완성차에 대한 역외 관세가 최대 80%에 이를 정도로 관세 장벽이 높다. 그러나 아세안자유무역협약(AFTA) 참가국 간에는 부품 현지화율이 40% 이상일 경우 무관세 혜택이 주어진다. 인도네시아 내 배터리, 완성차 생산이 가능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배터리셀 합작공장은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완성차 공장과 함께 아태 권역 전체 시장 공략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의선-구광모, 배터리 긴밀 협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은 지난해부터 배터리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왔다. 지난해 6월 정 회장이 LG화학 오창공장을 방문했을 때 구 회장이 직접 생산라인을 소개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구광모 LG 대표가 지난해 6월 충북 청주시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LG화학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구광모 LG 대표가 지난해 6월 충북 청주시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LG화학 제공.
정 회장의 관심은 향후 급속도로 성장할 전기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데 있었다는 설명. 현대차는 오는 2025년까지 23개 전기차 모델을 투입해 연간 판매량을 100만대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연간 100만대의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양은 약 25GWh에 달한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장수명(Long-Life) 배터리와 리튬-황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미래 배터리의 기술과 개발 방향성에 대해 구 회장이 직접 정 회장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수명 배터리는 현재 배터리보다 5배 이상 더 사용해도 성능이 유지되는 배터리이며 리튬-황 배터리는 전기차 주행 가능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려줄 수 있는 배터리다.

앞서 현대차는 2022년 양산 예정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의 2차 배터리 공급사로 LG에너지솔루션을 선정하고 최적 성능 확보를 위해 협업하고 있다. E-GMP 기반의 현대·기아차 전기차에 탑재될 LG에너지솔루션 제품은 성능이 대폭 향상된 차세대 고성능 리튬-이온 배터리다.

노정동/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