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가운데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가 가장 느린 일본에서 민간 기업의 기지 덕분에 한국 기업 주재원 대부분이 일찌감치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됐다.

7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일본 정부로부터 단체접종 법인으로 승인을 받고 지난 3일부터 도쿄 미나토구의 일본지역본부 사옥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로부터 제공받은 모더나 백신 1500명분의 1차 접종을 다음주까지 마무리하고 다음달 중순까지 2차 접종도 마칠 계획이다.

일본에 있는 외국 기업 중 단체접종 허가를 받은 곳은 대한항공이 유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덕분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등 일본에 있는 한국 항공사 및 관계사 직원과 가족, 도쿄에 법인이나 사무소를 둔 한국 기업의 주재원 대부분이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됐다.

일본은 모든 국민이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확보하고도 의료진과 접종장소가 부족해 접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접종률은 25.7%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꼴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 거주하는 교민과 주재원들은 더욱 접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이 대사관 직원과 주재원들의 우선 접종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일본 외무성은 한국대사관 직원 4명만 먼저 접종하라는 답을 내놨다.

기업 단체접종은 일본 정부가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내놓은 조치다. 직원 수가 1000명 이상이면서 자체적으로 의료진과 접종장소를 확보할 수 있는 기업이 후생노동성의 승인을 받으면 백신을 제공하는 형태다. 지난달 8일 모집을 시작하자마자 3700만 회분의 신청이 몰렸다. 일본 정부는 한때 신규 접수를 중단하는 등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 수가 150명인 대한항공 일본지역본부가 승인을 따낼 수 있었던 건 같은 항공사 연합(스카이팀) 회원사인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 등 외국 항공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덕분이었다. 모집이 시작되자마자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후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성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항공산업이 무역 등 경제활동 정상화의 첨병 역할을 한다는 것과 외국계 항공사 직원 대부분이 일본인이라는 점을 강조한 게 일본 정부를 움직였다는 평가다. 일본 정부의 승인이 떨어지자 주일한국기업연합회를 운영하는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가 네트워크를 활용해 주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접종자를 모집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