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8명(한경·옥소폴리틱스 설문조사 결과, 본지 6월 23일자 A1, 5면 참조)이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을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 현상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갈등 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조차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을 계기로 이제서야 일부 의원이 ‘관심을 한 번 가져볼까’ 하는 수준”(국민의힘 초선 위원)이다.
20대 남초·최악 취업난이 부른 '性戰'…서로 "불공정 피해자"
이 문제에 천착해 온 전문가들은 20대일수록 심각한 남초형 인구구조,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일자리 붕괴 등이 젠더 갈등을 불러왔거나, 더욱 부추기는 핵심 요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20대 남초 현상’이 불러온 젠더 갈등

여성과 비교한 남성 인구 비율이 20대(110%)에서 전체 평균(99.5%)보다 높은 수준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젠더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적 우위를 점유한 남성들이 정치적 발언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남녀 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거치는 과정에서 일부 현실화됐다. 여성할당제 폐지 등 일부 공약을 둘러싸고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치열한 논쟁이 펼쳐진 게 그런 사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시장에서 남성이 여성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것도 갈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인구구조가 젠더 갈등의 근본 요인이 아니라는 반박도 제기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결혼은 남자든 여자든 잘 안 하고 있는 만큼 왜곡된 성비가 남자들로 하여금 결혼을 못하게 만들고, 젠더 이슈로 확장됐다고 하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만성화한 취업난이 보다 근본적 요인일 것”이라고 했다.

○취업난이 근본 요인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376만3000명으로 전년보다 18만3000명 감소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이후 22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지난해 20대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쉬었음’이라고 답한 인구(41만5000명)는 25.2%(8만4000명) 불어났다. 증가폭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장기간 이어진 노동시장 경직화와 산업구조 재편, 경력직 위주의 채용 패턴 확산에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까지 겹치면서 20대의 취업난은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 남녀는 조그만 사회적 변화 조짐에도 “우리에게 더 불공정한 처사”라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성할당제 폐지나 ‘군 가산점’ 부활 같은 이슈에 ‘이대남’(20대 남성)들은 적극적으로 환영 의사를 밝히고 있다. 취업준비생 이모씨(30·남)는 “스펙을 쌓으며 취업 경쟁력을 키운 여성과 달리 남성들은 군대에서 공부할 기회를 잃었다”며 “역차별로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여성들도 그들 나름대로 불만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200대 상장사 등기임원 1441명 가운데 여성은 65명으로 4.5%에 불과하다.

여성계는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2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 30%에 비해 턱없이 낮은 게 엄연한 현실인 만큼 여성할당제는 꼭 필요한 제도인데, 공격 논란의 대상이 된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더 확산시켜야 할 정책이라는 것이다.

○“젠더 갈등에 숟가락 얹으려 해서야”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치권은 갈등의 방조, 혹은 갈라치기로 젠더 갈등을 키웠다. 이 이슈가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사회문제가 됐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2019년 1월 신년 기자회견)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의 ‘친여성 성향’에 불만을 쌓아오던 이대남이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결집하자, 이번엔 이들을 잡겠다며 정책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은 정치권의 대응은 의도와 달리 젠더 갈등을 되레 심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SNS를 통해 “여성 우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아직 유효하지만 일부는 상실됐다”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무엇이 바람직한 양성평등인지,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