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임상종양학회(ASCO)가 지난 6월 4~8일 5일간 온라인으로 열렸다. 맞춤형 대신 범용성을 높인 동종 세포치료제와 반응률을 개선한 병용 항암요법 등이 주목받았다. 소수만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제약업계의 신약 기술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ISSUE 1
자가 CAR-T 수준으로
‘껑충’ 뛰어오른 동종 CAR-T


키메릭 항원수용체 T세포(CAR-T)의 별명은 ‘꿈의 치료제’다. 완전관해(CR) 비율이 70% 이상에 이를 만큼 혈액암을 ‘씻은 듯’ 낫게 해주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기도 하지만 치료비용이 수억 원에 이를 만큼 비싸서 붙은 악명이기도 하다.

노바티스가 밝힌 미국 내 환자 1인당 CAR-T 치료비용은 5억 원 이상. 비현실적으로 비싼 CAR-T의 비용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기술이 바로 동종 CAR-T다.

자가 CAR-T가 비싼 까닭은 환자별로 T세포를 추출해 배양하고 유전자를 조작해야 하기 때문인데 동종 CAR-T는 기성품처럼 대량생산이 가능해 치료비용을 큰 폭으로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선 두 나스닥 상장사가 자가 CAR-T에 버금가는 동종 CAR-T의 임상결과를 발표했다.

알로젠테라퓨틱스
알로젠 테라퓨틱스는 카이트파마의 설립자인 아리 벨데그룬이 자가 CAR-T ‘예스카타’를 개발해 길리어드에 매각한 뒤 동종 CAR-T 개발을 위해 새로 설립한 회사다.

알로젠이 이번 학회에서 공개한 임상 1상 결과에 따르면 거대B세포림프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동종 CAR-T 후보물질 ‘ALLO-501’의 효능이 시판된 ‘키트루다’, ‘예스카타’에 견줄 수 있을 만큼 개선됐다.

ALLO-501의 객관적반응률(ORR)은 75%로 32명 중 24명 환자에게서 효과를 냈다. CR은 50%였다. 판매 중인 자가 CAR-T와 비교해보면 킴리아는 ORR이 50%, CR이 32%였으며 예스카타는 ORR 73%에 CR이 51%였다.

반응률과 효능 외 부작용 면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ALLO-501은 CAR-T를 투여한 후 환자에게서 흔히 일어나는 부작용인 사이토카인 폭풍 신드롬(CRS·Cytokine Release Syndrome) 중 3등급 이상 발생 비율이 0%로, 예스카타(13%), 킴리아(22%) 대비 우수했다. CAR-T 투여 후 CRS는 치료 과정 중 흔히 일어나지만 3단계 이상으로 심화될 경우 심각한 후유증이 남거나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초록 공개 이후 알로젠의 주가에는 극적인 변화가 없는 상태다. 지난해 12월 미국혈액학회(ASH)에서 동종 CAR-T 후보물질 ‘ALLO-715’의 임상 결과를 발표했을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임상 데이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한 것과 대비된다. 다발골수종(MM)을 적응증으로 하는 ‘ALLO-715’는 자가 CAR-T인 이데셀(Ide-cel)보다 ORR, CR 등에서 평가지표가 낮아 주당 33달러에서 25달러 선으로 약 24% 주가가 밀렸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긍정적인 동종 CAR-T 데이터임에도 주가 반응이 미지근한 까닭은 기대감이 선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프리시젼바이오사이언스
프리시젼바이오사이언스가 이번 학회에서 발표한 동종 CAR-T 임상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이 회사의 ‘PBCAR-0191’은 재발·불응성 비호지킨림프종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했다. ORR은 77%였으며, CR은 54%였다.

13명 환자 중 고용량을 투여한 7명에게선 좀 더 좋은 효과를 보였다. ORR은 100%였으며 CR은 71%였다. 김태희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이에 대해 “CRS가 발생하긴 했지만 1,2등급이기에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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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
차세대 면역항암제로 주목받는
LAG-3 저해제


면역항암제 분야에서는 ‘차세대 키트루다’ 자리를 둔 쟁탈전이 치열했다. 키트루다로 대표되는 PD-1 면역항암제는 효과는 우수하지만 반응률이 낮아 일부 환자에게만 도움이 되는 약점이 있었다. BMS를 비롯해 리제네론, 이뮤텝, MSD 등이 LAG-3 저해제를 차세대 면역항암제 또는 기존 면역관문억제제와의 유력한 파트너로 지목했다. LAG-3은 T세포의 증식과 활성화를 차단하는 기존 면역관문억제제 역할 외에도 조절 T세포(Tregs)를 통해 면역 억제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 연구원은 “이번 학회에서 발표된 긍정적인 병용 데이터를 보면 LAG-3이 차세대 면역항암제로 중요한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MS
BMS는 LAG-3 저해제 개발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곳으로 꼽힌다. BMS는 자사의 PD-1 억제제인 옵디보(니볼루맙)와 LAG-3 저해제 ‘렐라틀리맙(relatlimab)’의 병용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대상은 진행성 흑색종 환자 714명이었다.

무진행 생존기간(PFS)을 보면 옵디보를 단독으로 처방받은 경우 5.1개월이었으며, 옵디보와 렐라틀리맙을 함께 처방받은 환자군의 PFS는 10.1개월이었다. 약 2배 이상 긴 셈이다. 하지만 이미 현장에서 ‘검증’된 옵디보와 여보이 병용투여에 의한 PFS(11.5개월)에는 못 미쳤다. 이에 대해 허 연구원은 “무진행 생존기간 및 생존율은 여보이와의 병용이 렐라틀리맙보다 더 높았으나 안정성 면에선 렐라틀리맙과의 병용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리제네론과 MSD
리제네론과 MSD 또한 기존 면역항암제와 LAG-3 저해제를 병용투여한 임상시험 결과를 공개했다.

리제네론은 LAG-3 저해제인 피안리맙과 PD-1 면역관문억제제 립타요(성분명 세미필리맙)를 진행성 흑색종 환자에게 투여했다. 환자 33명 중 21명이 반응해 ORR은 64%였으며, 그중 3명은 완전관해, 나머지 18명은 부분 관해를 보였다.

MSD는 현미부수체 안전형(MSS) 대장암 환자 80명을 대상으로 키트루다와 LAG-3 저해제 페베젤리맙을 병용 투여한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대장암은 이전까지 키트루다가 전혀 듣지 않는 암종으로 알려져 있었다. 임상 결과, 반응률은 6.3%였으며 완전관해는 1명, 부분관해는 4명이었다. 무진행 생존기간은 2.1개월, 생존기간 중앙값은 8.3개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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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3
스타 항암제와의 ‘파트너’ 자리 노리는
국내 기업들

오스코텍은 이번 학회에서 아스트라제네카의 표적항암제 ‘타그리소’가 듣지 않는 표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변이 절제불가능한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레이저티닙과 아미반타맙 병용 1상 추가 데이터를 공개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는 총 45명이었으며 이 중 16명이 반응을 보여 ORR은 36%를 기록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타그리소 내성의 원인으로 꼽히는 EGFR, MET의 바이오마커 보유 환자 17명 중 8명이 반응(ORR 47%)을 보였다는 점이다. 박병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47%에 이르는 반응률은 매우 고무적인 수준”이라며 “현재 타그리소 내성 환자에 대한 표준 치료법이 없는 만큼 레이저티닙과 아미반타맙의 병용요법이 2022년 미국 FDA 혁신치료제로 지정되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메드팩토는 면역항암제의 ‘무덤’으로 꼽히는 대장암에 병용요법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대장암은 키트루다 단톡 투여 시 ORR이 0%다. 메드팩토는 MSS 전이성 대장암 환자 33명을 대상으로 키트루다와 벡토서팁을 투여해 ORR 15.2%를 기록했다. 박 연구원은 “MSS형 전이성 대장암 환자의 경우 전신적 화학요법을 제외하고 면역항암제 등 다른 표준 치료법은 없는 상황”이라며 “키트루다와 렌비마 병용투여 2상 데이터와 경쟁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안전성 면에선 에자이의 렌비마 대비 메드팩토의 벡토서팁이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초 공개된 키트루다와 렌비마와의 임상 2상 데이터에 따르면 ORR은 22%로 메드팩토의 벡토서팁의 결과를 상회했다. 하지만 장 천공을 비롯해 심각한 이상반응률이 환자 2명 중 1명꼴로 나타났다(50%). 벡토서팁의 심각한 이상반응률은 10% 미만이었다.

한미약품은 벨바라페닙(pan-RAF 저해제)과 코비메티닙 병용임상 1b상의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벨바라페닙은 한미약품이 2016년 제넨텍에 9200억 원 규모로 기술이전하기도 했던 품목이다. 하지만 임상시험 등 진척이 늦어 반환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기술이전 후 무려 6년 만에 성과가 나온 것이다. 허 연구원은 “임상 1상 데이터 확인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면서 반환 우려 및 벨바라페닙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진 상황이나 이번 진척된 데이터 발표로 인해 반환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임상 참여 대상은 진행성 고형암 환자 대상 NRAS 변이 흑색종 환자였다. 흑색종은 키트루다 등 기존 면역항암제가 비교적 잘 듣는 암으로 알려져 있지만 NRAS 변이 흑색종에 대해선 표준 치료법이 없는 상태다. 흑색종 환자 중 NRAS 변이 환자의 비율은 15~20% 정도다.

벨바라페닙과 코비메티닙 병용투여 결과, 13명의 NRAS 변이 흑색종 환자 중 5명에게서 부분반응을 보여 ORR 38.5%를 기록했다. 이는 NRAS 변이가 없는 일반 흑색종에서 키트루다 등 PD-1 면역항암제가 보이는 ORR(38%)과 유사한 수준이다. 박 연구원은 이번 결과를 두고 3중 병용임상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면역항암제는 반응지속시간이 길고 임상 참여 환자들은 로슈의 티쎈트릭을 투여받은 이력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티쎈트릭과 코비메티닙, 한미약품 벨바라페닙의 3중 병용요법 임상이 시작된 걸로 봐야 한다”며 “NRAS 변이 흑색종에 대한 표준 치료법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