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비빔밥과 소통
팬데믹 시대에 일상을 둘러싼 여러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어디에 가든 가장 먼저 반기는 체온기나 QR출입인증 등은 표면적인 변화를 대변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색함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당혹스러운 건 식당의 칸막이와 사라진 술자리다. 지인들과 방어막 없이 소통할 수 있었던 자유를 빼앗긴 기분이 드는 건 조금 다른 의미의 변화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식사와 술자리에서 희로애락을 나눠왔기에 이런 분위기에는 익숙하지 않다고 할까.

한데 모여 소통하는 문화. 우리는 예부터 소통을 중요시해왔다. 마을 어귀엔 어김없이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자리하고, 그 밑에서 동네 대소사는 물론이고 여염집 찬거리까지 다채로운 소통의 장이 열렸었다. 이런 소통은 음식문화에도 접목돼 있다. 농번기에 음식 장만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집집마다 다른 재료를 가져와 한데 모아 섞고, 비벼 먹는 비빔밥이 대표적이다. 비빔밥은 흔히 “비벼 먹고 말지 뭐” 하는 그저 그런 음식이 아니다. 이웃 간 정이 소통과 맞물려 한끼 품앗이로 승화된 걸작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은 전통음식이다.

비빔밥은 오늘날 한식의 대명사가 됐다. 그 원조로 대부분 전주를 떠올릴 텐데 고향 진주에도 그에 못지않은 비빔밥이 있다. 일곱 가지 보석이 어우러진 꽃과 같다 하여 ‘칠보화반(七寶花飯)’이라고 칭하는, 그 화려함만큼 맛도 일품인 진주비빔밥이다. 여기에는 모양새나 풍미와 달리 비운의 역사가 담겨 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두 차례 전투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퇴군하던 왜군의 파상공격이 8일간 이어진 두 번째 전투가 진주비빔밥을 탄생시킨 배경이다. 15분의 1의 수적 열세와 지원이 단절된 고립무원 속에 비빔밥은 성안의 민관인 6만 명을 소통케 한 매개체이자 항전을 독려한 원동력이었으리라.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맞물려 소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소통 부재는 세대, 성별, 종교, 이념 등 집단 간 갈등을 확대 재생산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 자칫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빙탄불용(氷炭不容)으로 치달을 수 있다. 지금의 모습은 팬데믹이 양적 팽창에 몰두해온 인류에게 그동안 간과했던 사회문제를 지적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소통을 통해 이를 메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주성 전투와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처럼 우리는 국난 극복 과정에서 하나 됨을 여지없이 보여왔다. 그 속에는 공존공영의 갈망을 위한 소통이 자리했다. 제맛을 가진 식재료들이 잘 어우러져 최상의 비빔밥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지금은 공존의 자세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집단 간 소통이 필요한 때다.

오늘 점심은 한동안 뜸했던 동료들과 비빔밥을 놓고 소통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