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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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인구절벽'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국가 인구가 2033년을 기점으로 줄어드는 것은 물론 2050년에는 지금과 비교해 6757만명이 증발할 전망이다. 비혼 출산을 꺼리는 문화와 높은 양육비·주거비 등이 동아시아 출산율을 끌어내린 배경으로 꼽힌다.

동아시아 2033년부터 인구감소 본격화

11일 국제연합(UN)과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한국(5182만2000명) 중국(14억4421만6000명) 일본(1억2605만1000명) 대만(2385만5000명) 인구(장래인구추계 중위 기준)는 총 16억4594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전세계 인구(78억7496만6000명)의 20.9%에 달하는 숫자다.

UN에 따르면 동아시아 국가의 인구는 매년 늘어나다 2032년에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세로 전환한다. 2040년 동아시아 인구는 2021년에 비해 910만7000명이 줄어든다. 현재 스위스 인구(865만4000명) 정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구감소 속도는 갈수록 빨라져 2050년 인구는 2021년에 비해 6757만7000명이 줄어든다. 현재의 프랑스 인구(6542만6000명)수만큼 증발하게 된다.

동아시아 국가별로 보면 한국은 2028년 5194만2000명을 정점으로 2029년 5194만1000명으로 줄어들어 매년 감소하게 된다. 일본은 2016년부터 일찌감치 인구가 쪼그라 들기 시작했다. 중국과 대만은 각각 2032년, 2030년부터 감소한다. 이처럼 동아시아 국가들 인구가 감소한 배경은 그만큼 출산율이 낮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UN에 따르면 2020~2025년 연평균 합계출산율은 한국(1.08명) 대만(1.24명) 일본(1.37명) 중국(1.7명) 등은 1~1.7명으로 집계됐다. 201개국 평균 합계출산율(2.54명)을 크게 밑도는 등 하위권으로 분류된다. 세계 최고인 아프리카 니제르(6.51명)는 물론 프랑스(1.85명) 미국(1.78명) 등 선진국에도 밀린다. 한국의 경우 동아시아는 물론 조사대상 201개국 가운데서도 최하위로 집계됐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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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외출산 비율 2.3%...OECD 최하위권

동아시아 국가들은 유교 문화를 공유하는 동시에 빠른 경제 성장을 겪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이 공통점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교 윤리와 법제도 탓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혼외 출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혼외 출산을 수용하지 못하는 만큼 혼외출산율(전체 출생아 가운데 혼외 출생아가 차지하는 비율)도 낮다. 2019년 기준 한국의 혼외출산율은 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었다. 2018년 기준 프랑스 60.4%, 스웨덴 54.5%, 영국 48.4%, 스페인 47.3%, 미국 39.6%, 이탈리아 34.0% 등의 혼외출산율을 크게 밑돌았다.

여성이 가사·양육을 짊어지는 이른바 '독박 육아' 문화도 출산율을 끌어내린 배경으로 꼽힌다. 래리 붐파스 위스콘신대 교수 등은 동아시아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자녀 돌봄, 가사노동, 시부모와의 동거·부양의 역할을 부여받는다는 '결혼패키지' 이론을 주장했다. 독박 육아·가사를 떠안을 것을 우려하는 현대 동아시아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피한다고 분석했다.

동아시아의 양육비 부담이 유독 크다는 분석도 출산율을 끌어내린 배경으로 꼽힌다. 동아시아 국가의 교육열이 높고 그만큼 교육비 등 양육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한스 피터 콜러 펜실베니아대 교수 등 분석에 따르면 2005년 한국과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2~3%에 달했다. 같은 기간 유럽(0.4%)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아시아 국가의 저출산 대응 전략연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좋은 대학이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는 교육과 노동시장 제도가 높은 사교육비로 이어졌다"며 "이 같은 문화가 일본과 한국의 낮은 출산율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미혼자 60% "주거·직장볼안으로 결혼 미뤄"

동아시아는 빠른 산업화를 겪으면서 대도시 밀집도가 심해졌다. 그만큼 대도시 주택값과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치솟았다. 값비싼 주택비·임대료 부담에 출산을 엄두조차 못 내는 동아시아 국민들이 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4월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국민 인식 및 욕구 심층조사’ 보고서를 보면 결혼 의사가 있는 19~47세 미혼 인구의 31%가 ‘주거 불안정’을 이유로 결혼을 연기하거나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일자리가 불안정해 결혼을 못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에 육박했다.

미혼자 10명 가운데 5~6명이 주거·직장 불안으로 결혼을 미루고 그만큼 출산율도 낮아진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행정자료를 활용한 2019년 신혼부부 통계 결과’를 보면 집을 소유한 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는 0.75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경우는 0.65명으로 나타났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집일수록 출산할 확률이 높았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기준 21조6822억달러(2경4143조원)로 전세계 GDP의 24.6%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세계 1위 미국(21조4332억 달러)을 웃돈다. 인구감소는 노동력을 줄여 동아시아의 잠재성장률을 갉아먹고 연금·의료비 지출 부담이 급증하게 된다. 그동안 세계 경제의 엔진을 역할을 하던 동아시아의 성장 속도도 급격하게 더뎌질 수밖에 없다.

혼외출산에 대한 지원제도를 설계하는 한편 맞돌봄 문화 등을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산을 극복한 유럽의 출산정책을 선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국가들은 1970년대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출산율이 1990년대 이후 회복세를 보이면서 최근에는 1.7~1.9명 수준으로 상승했다.

자녀가 있는 가구에 주거비와 보육비, 교육비를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는 유럽의 정책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평가다. 스웨덴과 프랑스 영국 등은 자녀가 있는 가구에 주거비와 주택임대료 보조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혼외출산을 포용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이 같은 혜택이 법적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제공돼야 한다는 평가다. 프랑스, 스웨덴 등은 시민연대협약, 동거법 등으로 법적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자녀가 있으면 가족수당 등을 수령할 수 있다.

김익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