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아케고스 마진콜보다 무서운 '바퀴벌레 이론'
주식투자 역사상 개인을 상대로 ‘불패’ 신화를 이어가던 헤지펀드가 연초 게임스톱발(發) 공매도 전쟁에서 참패한 데 이어 아케고스캐피털매니지먼트가 마진콜을 당하는 수모까지 발생했다. 빌 황이 운영하는 아케고스 사태를 계기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이후 한동안 잊혀졌던 ‘헤지펀드 위기설’이 다시 나돌고 있다.

헤지펀드란 대체로 10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파트너십을 결성한 뒤 카리브해 등 조세회피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일종의 사모펀드다. 나름대로 순기능이 있으나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과정에서 국제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1990년 이후 유럽 통화위기, 아시아 외환위기, LTCM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아케고스 마진콜보다 무서운 '바퀴벌레 이론'
이번 아케고스 사태에서 재확인됐듯이 헤지펀드가 투자 원금까지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면 투자자로부터 ‘마진콜’을 당한다. 같은 이름의 영화로 우리에게 ‘도덕적 해이의 극치’ 정도로만 알려진 마진콜은 펀드 수익률 하락으로 증거금 부족분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보전하라는 요구로, 응하지 않을 경우 펀드런에 직면한다.

헤지펀드가 자신의 고객으로부터 신뢰 유지를 생명처럼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개인 고객 비중이 높아진 최근과 같은 여건일수록 더 그렇다.

만약 투자 실적을 내지 못할 경우 시장으로부터 퇴출당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이 때문에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헤지펀드는 마진콜에 반드시 응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디레버리지로 연결되거나 상황이 긴박해 금융위기로 전이될 움직임을 보이면 중앙은행이 나서 긴급 유동성을 지원한다.

디레버리지란 마진콜을 당했을 때 헤지펀드가 증거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기존에 투자해 놓은 자산을 회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아케고스 마진콜 사태가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중국 인민은행의 테이퍼링과 맞물릴 경우 신용경색 우려가 급부상하면서 증시에 비관론이 순식간에 덮칠 수 있다.

특히 신흥국에 투자한 자금을 우선적으로 회수 대상으로 택한다. 이 때문에 신흥국에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라 통화 가치와 주가가 폭락한다. 헤지펀드 위기설이 나돌 때마다 선진국에서는 영향이 크지 않다가도 신흥국에서 엄청난 파장이 몰고 오는 ‘나비 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금융당국이 긴장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아케고스로만 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벌써부터 월가에서는 금융위기 당시 한동안 나돌았던 ‘바퀴벌레 이론(cockroach theory)’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 이론은 부엌 싱크대에서 발견된 바퀴벌레는 벽이나 바닥에 숨어있는 떼의 한 마리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금융 시스템으로 번지는 것을 잘 설명해 준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주축이 돼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대책을 보면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보다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아케코스 사태의 핵심인 차액거래결제(CFD)와 관련된 레버리지 규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금융위기 재발 방지 차원에서 마련된 도드-프랭크법의 핵심인 ‘볼커룰’ 부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번주에 열릴 국제통화기금(IMF) 춘계 총회를 앞두고 IMF 총재가 우려한 것처럼 한국 등 신흥국으로 위기가 전염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특정 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진단지표와 함께 최근에는 금융 시스템의 완충 능력을 알 수 있는 금융스트레스 지수가 활용된다.

두 지표로 한국을 진단해 보면 아케고스발 헤지펀드 위기설이 나돌기 시작한 이후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있으나 중장기 투자자금의 회수로 악화되면서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은 낮게 나온다. 하지만 자산 인플레 정도가 심한 가운데 유입 외자의 건전도가 약화되고 금융스트레스 지수가 오르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결국 최근 ‘아케고스 마진콜발 헤지펀드 위기설’은 실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계속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이미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를 겪은 우리로서는 그림자 금융 파악, CFD 제한, 조기경보체제 가동 등 사전에 충분한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할 때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