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오빠 잃은 손민규 할머니 사연 손녀가 낭독
문 대통령, 4·3특별법 개정 서명식…국방장관·경찰청장 첫 참석

3일 열린 제73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은 제주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눈물을 흘렸다.

이번 추념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와 비가 오는 날씨로 인해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 실내에서 70여 명만 참석해 봉행 됐다.

하지만 4·3의 아픔 앞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는 등 여느 추념식 못지않게 숙연하게 진행됐다.

추념식이 시작된 오전 10시 정각에 제주 전 지역에 설치된 경보방송을 통해 1분간 묵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묵념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등 참석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묵념하며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엄마를 얼마나 부르고 싶었을까"…제주4·3추념식 숙연히 거행
이날 대정여고 1학년 고가형(17) 양이 13살 어린 나이에 4·3을 겪은 손민규(87) 외할머니의 사연을 낭독해 참석자들을 눈물짓게 했다.

손 할머니는 4·3 당시 부모와 오빠 손돈규(1929년생) 씨를 잃었다.

손돈규 씨는 4·3 당시 19세로 1949년 3월 3일 조천초등학교 임시교사로 출근했다가 무고하게 체포됐다.

이후 불법 군사재판으로 인해 대전형무소로 이감됐다가 6·25 전쟁 발발 후 행방불명됐다.

손돈규 씨는 유족이 대리한 지난달 16일 재심 판결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가형 양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꾹 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당시 할머니는 지금의 저보다 어린 소녀였다"며 "저는 하루에도 수십번 엄마를 부르는데 저보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하고 얼마나 불러보고 싶으셨을까"라고 말했다.

고 양은 또 "가끔 할머니께 물어본다.

그때 4·3이 아니었다면 훌륭한 선생님이 됐을 텐데 억울하지 않냐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경해도 살암시난 살아져라'(그저 살아오다 보니 살아졌다)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지난달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4·3특별법)이 개정되면서 손 할머니의 오빠 손돈규 씨와 비슷한 사례로 억울하게 수형 피해로 숨지거나 행방불명된 2천530명이 일괄 재심이 가능하게 됐다.

현재 행방불명 수형인 333명과 일반재판 생존 수형인 2명이 개별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엄마를 얼마나 부르고 싶었을까"…제주4·3추념식 숙연히 거행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에서 "가족을 잃고, 명예와 존엄, 고향과 꿈을 빼앗긴 2천162명의 특별재심이 아직 남아 있다"며 "정부는 한 분 한 분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배상과 보상을 통해 국가폭력에 빼앗긴 것들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리는 것으로 국가의 책임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무엇으로도 지나간 설움을 다 풀어낼 수 없겠지만, 정부는 추가 진상조사는 물론, 수형인 명예회복을 위한 후속 조치에도 완벽히 하겠다.

배상과 보상에서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임종 제주4·3유족회장은 제주 출신 김수열 시인의 '우리의 4·3 이 따뜻한 봄으로 기억되는 그 날까지'라는 묵념사를 낭독했다.

또 추모 영상 상영과 동시에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의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중 일부를 제주 출신 배우 고두심 씨가 낭독했다.

특히 이번 추념식에는 서욱 국방부 장관과 김창룡 경찰청장이 국방부 장관과 경찰청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추념식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4·3평화공원 위령제단으로 이동해 국방부 의장대의 지원을 받으며 4·3 영령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제주 4·3을 상징하는 동백꽃을 헌화 및 분향했다.

문 대통령 내외가 헌화·분향하는 동안 싱어송라이터 하림 씨가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제주동중학교 1학년 이하은 학생이 '제주의 봄'을 불렀다.

이후 위패봉안관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서명식이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2000년 제정된 제주4·3특별법이 7차에 걸쳐 개정되는 과정의 모든 법률과 시행령을 묶은 책자에 서명했다.

서명식에는 오임종 제주4·3유족회장,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서욱 국방부 장관, 박범계 법무부 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김창룡 경찰청장,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참석했다.

이날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는 부슬비가 내리면서 무지개가 떠 4·3 영령과 유족, 추념식 참가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