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처럼 살며시 여름이 사라졌네


                                 에밀리 디킨슨


슬픔처럼 살며시

여름이 사라졌네-

너무나 살며시 사라져

배신 같지도 않았네-

고요가 증류되어 떨어졌네.

오래전에 시작된 석양처럼,

아니면, 늦은 오후를

홀로 보내는 자연처럼-

땅거미가 조금 더 일찍 내렸고-

낯선 아침은 떠나야 하는 손님처럼-

정중하지만, 애타는 마음으로

햇살을 내밀었네-

그리하여, 새처럼,

혹은 배처럼,

우리의 여름은 그녀의 빛을

미의 세계로 도피시켰다네.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사후에 더 유명해진 미국 여성 시인이다. 어릴 때는 들판에서 활발하게 뛰놀고 동네 아이들과 잘 어울린 소녀였다. 그러다 사춘기 때 여학교의 경직된 분위기에 염증을 느껴 중퇴한 뒤로는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25세 때 아버지를 만나러 워싱턴을 방문한 게 거의 유일한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필라델피아의 친구 집에서 2주간 머무른 그녀는 거기에서 찰스 워즈워스 목사의 설교를 듣고 푹 빠졌다. 목사는 기혼자였다. 혼자 콩닥거리는 짝사랑이었으므로 별 사건은 없었지만 이별할 때 그녀의 마음은 미어지는 듯했다.

고향에 온 뒤에도 그와 영혼의 문제를 다룬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를 꿈꿨으나 결국 ‘저는 당신과 함께 살 수 없어요’라는 시로 슬픔을 혼자 삭여야 했다. 30세 이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은둔한 그녀는 흰 옷만 입는다고 해서 ‘뉴잉글랜드의 수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대인기피 증세는 종교적 갈등과 병약한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딸의 책임감, 아버지와의 생각 차이 등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짝사랑했던 워즈워스 목사와의 이별뿐만 아니라 자신을 ‘북극성처럼 빛나는 존재’라고 호평해준 로드 판사의 죽음 때문에 절망했다고 한다. 로드는 그녀가 48세쯤 사모했던 판사로 아버지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로드에게 쓴 편지에 온화하고 성숙한 사랑을 담아 보냈고, 그도 그녀의 사랑에 호응했지만 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56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가 남긴 작품은 방대했다. 시가 1775편에 이르렀고 산문 124편, 편지 1049통이었다. 하지만 생전에는 익명으로 시 7편만 발표하고 나머지는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시에는 제목 대신 번호만 붙어 있다. 허무와 죽음, 이별에 관한 시가 유난히 많다. 1540번 시 ‘슬픔처럼 살며시 여름이 사라졌네’에서도 이별을 다루고 있다. 여름이 슬픔처럼 살며시 사라져서 배신 같지도 않게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그것은 ‘오래전에 시작된 석양’이나 ‘늦은 오후를 홀로 보내는 자연’이기도 하고 ‘떠나야 하는 손님처럼/ 정중하지만, 애타는 마음으로’ 햇살을 밀어내는 쓸쓸함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다.

처연하기 짝이 없는 계절·세월과의 결별을 이렇게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삶인 ‘여름’이 그녀의 빛을 미지의 세계로 도피시켰기 때문이다. 어떤 어휘를 강조하기 위해 구두점 대신 대시(-)를 자주 사용하고 일부러 대문자를 많이 쓴 것도 그렇다. 응축된 단어와 구, 시형 등은 오랜 은둔 생활에서 체득한 것이다. 가장 평범한 것과 초월적인 것을 대비시키며 허무와 죽음, 상실과 이별을 노래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그녀는 시를 이렇게 정의했다. ‘책을 읽다가 온몸이 싸늘해져 어떤 불덩이로도 녹일 수 없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시다. 머리끝이 곤두서면 그것이 바로 시다. 나는 오직 그런 방법으로 시를 본다.’

그 시의 정신은 싸늘하고 차가워서 어떤 불덩이로도 녹일 수 없었지만, 그의 삶은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의 명징한 의식으로 벼려져 있다. 그런 삶에서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랑의 ‘그릇’을 새삼 발견한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