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고속도로를 들어선다.



얕은 산기슭 동쪽에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빛에 내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저 붉은 태양열을 받으며 “또 다시 꿈꾸는 삶”을 즐길 수 있다.



베에토벤의 미뉴에트를 듣는다. 유난히 맑고 여린 바이올린 음색이 날씨와 어울린다. 한 시간 남짓 달려 가면 K사 120명의 신입사원이 기다리는 곳에 도착한다. 오늘은 무슨 이야길 해 줄까 고민하다가 “지금의 마음”을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어찌 기쁜 순간이 아닌가?



휴일 아침 일찍 들른 서점에서 무슨 책을 사야 할지 몰라 배회하던 중 영미(英美) 시집 한 권을 발견한다. 시상(詩想)에 맞는 그림을 그려넣은 책이 예뻐서 집어 든다. 몇 장 뒤적이다 보니 암기하기 좋은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 계산대로 들고 간다. 몇 년 동안 암과 싸우면서 시와 수필을 쓰고, 강단에 서고 계신 영문학 교수님이 정리한 책이다. 부드럽고 강인한 여교수의 감성과 미적(美的) 감각이 묻어난다.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읽어야지, 끝까지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루던 책을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마다 느끼는 마음이다. “정말 시원하다. 그래 이 맛이야” 스스로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알고 배우고 느끼며 깨닫는 즐거움을 어느 황금과 비교할 수 있으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노란 종이를 펴 놓고 새로 산 만년필로 글을 쓴다.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를 쓰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마음대로 쓴다. 무슨 말부터 써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중 첫 글자가 떠오른다. “생각의 정리가 글”이라고 쇼팬하우어가 말했다. 얇은 종이에 먹는 파란 잉크 색이 아름답다.



이틀동안 외부 강의를 가느라 사무실을 비워놓았다. 사흘 만에 출근을 해 보니 책상 위에 카드와 함께 작은 소포 두 개가 놓여 있다.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상처나지 않게 뜯어 본다. 보낸 사람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책과 학용품을 정성스럽게 싸서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넣어 부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정성과 사랑이 읽어진다. “나도 얼른 보내야지.”.



수북이 쌓인 자료를 정리하는 시간, 퀴즈 방송 보면서 정답을 맞추는 순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짐을 꾸리는 시간,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 순간, 보고 싶은 사람 우연히 만나는 순간. 그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그로부터 먼저 전화가 걸려 오는 순간, ……



로또 복권이 당첨되지 않더라도, 부동산으로 대박을 터뜨리지 않더라도, 연말결선에서 대상을 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과 시간은 많다.



수 많은 시간을 긴장과 스트레스로 보내면서, 정신없이 자신을 잊고 살지만, 해야 할 일이 많고 만날 사람이 많고, 즐길 수 있있는 기회가 많다는 건 무지무지 행복한 거다.



갑자기 헨리 포드의 말이 생각난다.



“한 푼도 저축하지 마라. 모든 것을 자신에게 투자하라. 나는 40세 까지 한 푼도 저축하지 않았다.”



건강하시고 돈 많이 버시라는 새해 인사에 덧붙여 이제는 “정신의 건강과 풍요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라고 묻는 어느 철학자의 질문에 대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