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답을 찾다 도레이 AI전략 ‘암묵지’

“CEO를 비롯한 모든 임원은 현장의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어야 한다.”
일본 소재업체의 강자 도레이의 오늘을 있게 한 마에다 가쓰노스케 명예회장이 회사 경영에서 강조하는 단어는 바로 ‘현장주의’입니다. 기업의 모든 해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입니다. 도레이 역사에서 현장주의는 기업의 명운처럼 지켜져오고 있습니다. 어떤 업무라도 그 현장에 정통한 임원이 판단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학습과 경험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과 정보가 가장 훌륭한 데이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암묵지(암묵적 지식)라고도 합니다. 암묵지가 현장에서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도레이는 고객과 소비자들에게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고객들과 공감하면서 각종 데이터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얻어내 활용하는 전략을 계속 펼쳐왔습니다. 현장과 고객, 이것이 도레이가 생각하는 디지털과 인공지능 전략의 기본 철학입니다.

데이터 확보위한 유니클로 합작

도레이의 오늘을 있게 한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가 유니클로(패스트리테일링의 자회사)와의 합작입니다. 유니클로의 히트 상품인 히트텍과 울트라다운 등은 도레이의 특수 소재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도레이 매출의 40%가 넘습니다. 유니클로와 도레이가 손을 잡고 첨단기능 의류를 개발한 건 2003년이었습니다. 이때 도레이는 유니클로 매장의 의류 판매 정보와 공장의 생산 데이터를 자기 회사와 공유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도레이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소재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구매 이력과 고객의 요구사항 등 유니클로의 판매정보와 생산라인 상황 등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소비자의 요구 사항과 가격 공정과정 등의 전략을 짰습니다. 도레이는 일찌감치 현장의 데이터에 귀를 기울였던 겁니다.
2016년부터는 아예 점포와 전자상거래(EC) 판매현장과 공장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매장에서 인기가 있는 색상과 사이즈 등을 기민하게 파악해 시장 상황에 맞게 소재 생산을 늘려 의류 생산도 바로 증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데이터 공유 전략은 곧바로 시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소비자들의 제습 및 보온 요구에 맞춘 기능성 소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 히트테크 제품이 성공할 수 있게 된 비결이었습니다. 그 결과 20년간 절반으로 줄어든 섬유시장에서 도레이는 9.5배의 이익을 내면서 일본 최대의 소재 섬유기업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현장에서 답을 찾다 도레이 AI전략 ‘암묵지’

탄소섬유의 성공, 데이터축적의 성과

도레이의 오늘을 있게 한 결정적 사건은 탄소섬유 개발과 생산이었습니다. 탄소섬유는 무게가 철의 4분의 1 정도이지만 강도는 철의 10배나 됩니다. 도레이는 1960년대 이미 개발한 탄소섬유를 1974년부터 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에 공급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도레이는 항공기 경량화 추세에 맞춰 보잉이 항공기 소재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도레이는 고도의 각종 기술이 종합적으로 요구되는 항공기소재 분야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탄소섬유는 현재 도레이의 수익구조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기도 합니다.
정작 도레이가 보잉의 관심을 끌게 된 데에는 보잉에 탄소섬유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성형 시뮬레이션과 가공에 관한 지원이 있었습니다. 자회사인 도레이엔지니어링은 성형시뮬레이션에 그치지 않고 항공기 주날개의 조립 가공장치 등 복합재료와 관련한 자동화 작업을 꾀했습니다. 도레이의 생산프로세스를 대행하면서 수많은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현장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면서 개선책을 모색한 게 보잉에 큰 도움이 됐나 봅니다.
현장에서 답을 찾다 도레이 AI전략 ‘암묵지’

단조로운 업무, AI로 대체

지난해 5월 도레이는 중장기 경영과제로 ‘DX에 의한 경영 고도화’를 내세웠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연구개발에서 생산까지 프로세스의 고도화와 효율화를 달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생산 공정에서 모니터링과 검사에서 AI를 활용하게 됩니다. 도레이는 단조로운 업무를 AI로 대체하면 관련 직원들을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로 돌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회사가 다루는 제품은 다양하지만 앞으로도 각 공장의 성공사례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시킬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개발 분야에서 AI를 이용하는 게 생산 분야보다 더 중요할 수가 있습니다. 풍부한 재료들의 데이터에서 AI를 사용해 효율적으로 첨단 소재를 개발, 생산하는 재료정보학(MI: Materials Informatics)을 활용하는 개념입니다. MI는 플라스틱 등의 근원이 되는 고분자의 구조 등 재료에 관한 데이터를 컴퓨터에 기계학습시키는 것으로 최단거리에서 개발자가 원하는 물성을 찾는 기술입니다. 도레이가 다루는 고분자 재료의 특성은 화학 구조만이 아니라 성형가공 및 첨가제 등 여러 요인에 의존합니다. 기존 재료 설계에선 재료를 찾지 못하면 몇 번이라도 시작을 반복해야 합니다. 도레이는 AI를 활용해 시뮬레이션과 인포매틱스에 의한 예측 설계를 구사했습니다. 말하자면 가상실험에 의해 새 모델을 찾는 것이죠.

결국 AI + 현장이 핵심 역량

정작 도레이는 도레이밖에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재료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MI와 AI를 동시에 쓰면서도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물질을 개발하는 작업입니다. 도레이는 유니클로 개발 때와 보잉과 탄소섬유를 공동 생산해낼 때도 수요 현장의 충분한 데이터와 경험자의 암묵지를 기반으로 소재 물질을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둬왔습니다. 도레이만의 현장감과 노하우가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화학구조에서 독자 계산에 기반한 분자 연구를 30년 이상 해온 게 가장 큰 노하우이자 핵심역량입니다.
현재 도레이는 이런 노하우를 기반으로 전자기기 소재를 올해 내놓을 방침입니다. MI를 사용한 도레이식의 전자재료 상용화에 목표를 두었습니다. AI와 관련이 없는 각 분야의 경험적 지식과 암묵지를 붙이는 것입니다. 시게모토 이사무 도레이 첨단재료연구소 연구주간은 “디지털 기술은 어디까지나 재료 설계의 방향성과 힌트를 얻는 기술이며 진정으로 필요한 건 재료에 대한 인간의 깊은 통찰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앞으로 도레이의 AI 분발을 기대합니다.
“일본의 현장 능력을 강점으로 살릴 시대의 도래에 주목해야 한다. 첨단 디지털 기술자체는 강점이 되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쓰면 가치가 생겨나는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디지털화해야 하는 포인트와 프로세스를 발견하는 힘이 있는 것은 현장의 인재이다. 디지털 변혁의 주 싸움터는 가상의 현장이 아니라 산업의 리얼한 현장에 있다. 리얼한 현장의 디지털 전환(DX)은 현장에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이 강력한 무기다. 아날로그적인 숙련기술을 디지털화해 조직 내에 이식하는, 혹은 피지컬(물리적인)한 요소와 디지털을 융합한 시스템에서 고객에 새로운 가치를 낳게 하는 틀은 강한 현장력을 가지지 않은 해외기업들은 흉내낼 수 없다. 이런 DX 추진이 일본의 승산이라고 생각한다.”
(마스다 다카시 도레이 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의 글에서)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