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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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도 없지만 매물도 별로 없어요. 집주인들이나 매수 희망자들이나 모두 눈치를 보는 상황이죠.” (서울 송파구 잠실 U공인 관계자)

정부가 2025년까지 서울 32만3000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83만6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공공 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을 지난 4일 발표한 이후 10여일이 지난 현장에는 ‘거래 절벽’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서울 외곽지역이나 노후주택 밀집지역에선 집을 사기를 불안해 하는 매수자들이 매매를 포기했지만, 정책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신축 단지나 강남 재건축 일대에선 매도자들이 집값이 더 오를까하는 기대감에 매매를 미루는 분위기다. 지역에 따라 매도자와 매수자의 입장이 다르지만, 시장에서는 결국 '거래절벽'에 가깝게 매매가 뚝 끊겼다.

노후주택지역, 거래 대부분 실종

1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의 빌라 밀집지역이나 노후주택이 많은 재개발 아파트 부동산 현장은 지난 4일 대책 발표 이후 거래가 사실상 대부분 실종됐다. 공공주도 정비사업지로 선정되면 대책 발표일 이후 매입한 주택은 현금 청산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사업 추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집을 샀는데 나중에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제 값을 받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쫓겨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투자 관점에서 빌라 매수를 알아보던 수요가 끊겼고, 실거주를 위해 역세권 다세대주택 매수를 저울질하던 실수요자들도 매수를 미뤘다. 서울 상암동 DMC 인근 재개발지역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A씨는 최근 며칠간 4일 전후로 빌라 매수를 위해 가계약을 진행한 매수인들의 문의를 받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A씨는 "대책 발표 직전 가계약금을 걸었던 매수인들이 나중에 혹시라도 공공시행 재개발을 할 경우 현금청산 대상이 되냐며 불안해 하는 통에 그 내용을 이리저리 알아보느라 혼났다“며 ”기존에 매수 의사를 보여왔던 고객들도 정부 정책이 좀더 구체적으로 나올 때까지 매매 계약을 미루겠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서울 거리에 신축빌라 매매에 대한 광고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거리에 신축빌라 매매에 대한 광고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집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원주민들은 주택 가치가 크게 떨어질까 불안한 상황이다. 구로구 T공인 대표도 ”인근 재개발 추진 지역에 거주하는 한 집주인이 1년 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주택을 처분하고 이사를 가려 했는데 앞으로 집이 안팔리면 어떻게 하냐고 몇 번이나 중개업소를 찾아왔다“고 전했다.

그는 ”이 곳 다세대 주택 소유주들은 집주인이긴 하지만 자산 규모가 크지 않은 서민층이 대부분“이라면서 ”나중에 이 지역이 개발되더라도 추가분담금을 낼 여력이 없어 집을 팔아야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사실상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소유주들의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강남 재건축엔 수요 몰리는 중

서울 외곽지역이나 중저가 주택이 밀집한 지역은 거래가 끊기면서 호가가 약보합세로 돌아서는 분위기지만, 강남이나 새 아파트 밀집지역은 상황이 다르다. '공공재건축·재개발 결사 반대'를 외치는 서울 강남 등 핵심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나 신축 단지들은 오히려 대책 이후 값이 뛰는 분위기다.

새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난 4일 이후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마포마포프레스티지자이 전용 59㎡ 입주권의 호가가 발표 전 15억 중후반대에서 발표 후 17억원으로 치솟았다. 최대 1억5000만원 이상 뛴 것이다. 4년차에 접어든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도 발표 직후 호가가 최대 1억5000만원 이상 상승했다. 대책 이전 20억원 중후반대였던 호가는 최대 22억원까지 올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도 사실상 공공주도 재건축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없어 호가가 뛰는 모양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주로 중개하는 I공인 관계자는 ”아직 집주인들이 상황을 더 지켜본 후 팔겠다며 매도를 잠시 스톱하는 분위기"라면서도 "공공 재건축에 동의할 조합원이 없을 것이라 봐 호가를 올려도 되지 않겠냐는 문의가 하루에도 여러건 나온다“고 했다.

관련업계에서는 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대책이 '핵심지·비핵심지' 간의 양극화만 부추길 뿐만 아니라, 그간 아파트값 상승세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었던 서민층의 사유재산권만 침해하는 모양새라는 비판이 나온다.

주택 공급 선행지표인 인허가 건수가 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가뜩이나 신축이나 강남으로 몰린 수요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건설실적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 인허가 건수는 총 45만7514건으로, 2013년 이후 가장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5년간 평균치보다 3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통상 주택은 사업 인허가를 받은 시점부터 입주 때까지 3~4년이 걸린다. 당장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입주 물량도 올해와 내년 추산 규모가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든 마당이다. 한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시장의 수요가 몇 안되는 신축으로 전부 쏠린 마당에 인허가 물량마저 급감해 버렸으니, ‘공급절벽’ 장기화는 기정사실이 된 셈“이라고 우려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