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Highlight - part.1] 마이크로니들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세계경제포럼(WEF)이 ‘2020년 10대 유망기술’을 발표했다. 2020년을 기준으로 3~5년 사이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큰 기술이다. 의료, 헬스케어, IT, 생명공학, 에너지 등 다양한 과학분야에서 선정한다. 의료 분야에서는 마이크로니들과 디지털 의료가 선정됐다.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이 기술이 어떻게 발전돼 왔고, 앞으로는 의료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알아봤다.

마이크로니들이 등장한 건 1970년대다. 1970년대 는 나노입자, 리포솜, 바이러스 등 다양한 약물전달 시스템의 연구와 개발이 이뤄지던 시기다. 1960년 대까지는 대부분 경구투여나 주사기를 이용해 약 물을 주입했다. 하지만 경구용 약물은 신체 내 효 소와 소화액에 의해 분해되거나 변성되는 경우가 있어 체내 흡수율이 낮아질 수 있다. 주사기를 사 용하는 경우 반드시 전문의료진을 통해 접종이 가 능하다는 점에서 환자의 순응성이 떨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경피약물 투여 방식, 흔히 ‘경피제형(파스)’으로 알려진 약물 전달시스템이다. 편의성은 크지만 의약품으로서 효 능을 발휘하기에는 약물의 흡수성이 매우 떨어진 다. 이런 배경에서 마이크로니들의 등장은 의학계 와 과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90년대부터 급성장 시작한 마이크로니들

마이크로니들은 피부 각질층을 관통해 표피 및 진 피층 등으로 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 미세구조체를 말한다. 마이크로니들은 피부 표면에 부착돼 표피에 마이크로 단위의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통해 약물이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마이크로니들의 개념은 1970년대 최초로 발표돼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당장 생산에 돌입할 수는 없었다. 마이크로 단위의 얇은 바늘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를 가능하게 할 미세가공 기술이 필요했다. 결국 20여 년간 아이디어만 떠돌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97년 마크 프라우스니츠와 마크 알렌 두 명의 미국 조지아 공대 교수가 실리콘을 식각해 마이크로니들을 제작한 연구논문이 최초로 발표됐다. 그때부터 마이크로니들의 디자인, 재료 및 제작 공정에 대해 학계를 중심으로 집중 연구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니들은 다양한 기하학적 구조 및 크기로 제작됐고, 제작 공정의 발달에 따라 다양한 물질(실리콘, 금속, 고분자)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초기 마이크로니들 제작에 사용되었던 실리콘의 경우, 기존 반도체 공정을 응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공정 시간과 비용이 많이 요구됐고 특히 표피 내에서 마이크로니들이 부러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좀 더 기계적 강도가 있는 금속 재질을 이용한 마이크로니들 개발이 시작됐고, 얇은 금속판을 물리적·화학적 식각법으로 패터닝(patterning)해 마이크로니들을 제작하게 됐다. 금속 마이크로니들은 표피 내 삽입 시 부러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제작 공정상 3차원 구조를 만들기가 어려워 많은 니들을 좁은 공간에 배열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탑재할 수 있는 약물량이 제한적이었다.

실리콘과 금속 마이크로니들의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연구들이 이뤄졌다. 필자(박정환 교수)가 프라우스니츠 교수의 연구실에 있을 때, 생분해성 혹은 용해성 고분자로 구성된 마이크로니들을 최초로 제안했다. 고분자를 이용한 마이크로니들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난 후, 대부분 마이크로니들은 실리콘이나 금속에서 벗어나 고분자로 제작하게 됐다.

※ 마이크로니들의 종류에 따른 장점과 한계점

마이크로니들은 약물전달 전략에 따라 솔리드 마이크로니들, 코팅 마이크로니들, 생분해성·용해성 마이크로니들, 중공형(hollow) 마이크로니들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타입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사용 목적에 따라 전략적 사용이 필요하다.

A. 솔리드 마이크로니들
일반적으로 실리콘, 금속, 혹은 비분해성 고분자로 제조되고 단순히 물리적으로 피부 각질층 및 표피층을 관통해 피부 내부로 채널을 생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후 피부 위에 약물을 도포해 약물이 니들에 의해 생성된 채널을 통해 표피 내로 확산된다. 가장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법이지만, 표피 내로 전달되는 약물의 양을 제어하기 어렵고 마이크로니들 적용 후 약물을 따로 전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B. 코팅 마이크로니들
솔리드 마이크로니들 표면에 약물 혹은 약물이 포함된 제제를 코팅해 제조한다. 때문에 마이크로니들 자체가 매우 균일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정량의 약물이 탑재돼야 한다는 허들이 존재한다. 또 코팅 마이크로니들은 피부에 삽입 시 니들 표면에 균질하게 코팅된 약제가 표피 내로 정량 전달돼야 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제작기술이 요구된다. 크기가 작은 마이크로니들의 표면 면적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코팅할 수 있는 약물의 양도 적다. 소량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백신, 단백질 및 DNA 등의 전달에 적합하다.

C. 생분해성·용해성 마이크로니들
일반적으로 약물이 포함된 고분자 용액 자체를 몰드(거푸집)에 채우는 방식으로 제조된다. 다양한 고분자 물질로 구성된 마이크로니들은 표피 내에서 완전히 용해 및 분해 가능하므로 의료 폐기물이 남지 않고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D. 중공형 마이크로니들
일반 피하주사기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며, 피부를 관통 후 마이크로니들의 내부 구멍을 통해 약물을 체내에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 형태의 마이크로니들은 실리콘, 금속, 유리와 고분자 및 세라믹으로 제조되며, 다른 형태의 마이크로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량의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니들 적용 시 피부 조직에 의해 구멍이 막힐 가능성이 있고, 약물 전달 중 누출로 인해 정량 전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 때문에 아직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
[Issue Highlight - part.1] 마이크로니들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대량 생산 위한 연구 증가3D 프린팅 이용해 정교함 더해

지금까지 솔리드 마이크로니들, 코팅 마이크로니 들, 생분해성·용해성 마이크로니들, 중공형 마이 크로니들 등 다양한 방식의 마이크로니들이 개발 됐다. 현재는 각각의 마이크로니들을 어떻게 대량 생산할 것이냐에 집중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제조 공정이 발달해 마이크로니들 제작에 유리한 공정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대량 생 산 공정을 확보하고 있으며 의약품 생산에 적합한 환경인 우수 의약품품질관리기준(GMP) 공정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마이크로니들을 제작 하는 것을 넘어서 물질과 오염들을 관리하는 수준이다.

이에 더해 최근에 필자(진성규 교수)가 주목하는 방식은 3D 프린팅 방식이다. 3D 프린팅은 생산 비 용이 적고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이 많은 데다 정교한 구조를 만들 수 있어 마이크로니들의 대량 생산에 적합하다. 기존의 제조기술은 단순한 구조 의 마이크로니들 생산만이 가능하지만, 새로운 3D 프린팅 기술은 더 정교하고 복잡한 형태를 구현할 수 있어 약물의 유형이나 약동학적인 특성 등을 잘 반영할 수 있다.

실제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마이크로니들을 이용 해 피부암 치료제인 ‘다카바진’, 비스테로이드계 항 염증제인 ‘디클로페낙’ 등의 약물이 방출되는 양과 속도를 제어한 연구도 다수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 이나주립대 연구진은 ‘CLIP(Continuous Liquid Interface Production)’ 3D 프린팅 방식을 이용해 100여 개의 마이크로니들로 구성된 패치를 10분 이 내에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CLIP은 자외선과 산소 투과량을 조절해 고분자 물 질을 적층하는 새로운 프린팅 방식이다. 국제학술 지 <플로스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은 다 양한 고분자 물질을 이용해 사각뿔 형태의 마이크 로니들을 제작했고, 약물의 방출량 제어에 성공했 다. 물질에 따라 제작 시간은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패치 당 10분 안에 제작을 완료했으며, 2분 안에 마 친 경우도 있었다.하지만 복잡한 니들이 아닌 일반적인 니들의 경우 기존 제작 공정에서 한 어레이를 제작하는 데 1분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그에 비해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작 단가가 높은 것은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데 제한적이다.

이 외에도 여러 외과 수술에 사용되는 조직 지지체(스캐폴드), 신경유도도관, 심혈관 스텐트를 생산하는 데 널리 사용되는 마이크로광조형기술(Micro stereolithography) 등을 이용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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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마이크로니들 의약품? 조사노 파마의 편두통 치료제 FDA 허가심사 중

이처럼 마이크로니들을 의약품 제형으로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와 함께 여러 임상시험도 진행되고 있다.

2008년부터 이후 10년간 마이크로니들의 잠재성을 보고 미국의 3M, 머크, GSK 등 글로벌 빅파마들이 마이크로니들의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현재 다양한 약물의 비임상 및 임상시험에 돌입해 인체사용 적합성과 약물의 효능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함께 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세계적으로 마이크로니들을 이끄는 기업으로는 백사스, 마이크론 바이오메디컬, 코리움, 조사노 파마 등이 있다. 마이크론 바이오메디컬은 현재 인플루엔자 백신의 임상 2상에 진입했다. 머크와 협력관계에 있는 백사스는 부갑상선호르몬과 글루카곤 투여를 위한 마이크로니들이 임상 2상을, 편두통 치료약인 ‘졸미트립탄’은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조사노 파마의 급성편두통 치료제인 ‘큐트립타(Qtrypta)’는 임상 3상을 마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신청을 한 상태로, 현재로서는 가장 빠른 마이크로니들 의약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 미국 FDA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와는 다르게 임상 3상 이전에는 대량생산 공정 및 시설이 없이도 서류 절차만 통과하면 임상진입을 허가했다. 마이크로니들을 의료기기 관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니들 제품화를 위한 시설, 공정, 대량생산에 대한 기술, 분석법, 품질관리(QC) 등 전체적인 완성도가 없이도 임상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FDA에서 마이크로니들에 대한 규정을 발표한 이후 마이크로니들은 의료기기가 아닌 의약품으로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대다수 마이크로니들 기업이 이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사전에 미리 확립한 회사는 해외 진출에 있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할 수 있다.
[Issue Highlight - part.1] 마이크로니들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Issue Highlight - part.1] 마이크로니들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