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수합병(M&A) 시장은 '상저하고(上低下高)'였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상반기까지 잠잠했던 거래 수요가 하반기에 급격히 쏟아졌지요. 코로나19로 인한 구조조정 및 현금 마련 수요와 미래 산업재편에 대비하려는 기업들의 의지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유동성 장세에 달아오른 증시 덕분에 주식발행시장(ECM)도 큰 주목을 받았고요.

◆"빅딜마다 CS"..2년 연속 왕좌 수성

이경인 CS IB 대표
이경인 CS IB 대표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 매체 마켓인사이트와 에프앤가이드가 함께 집계한 2020년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M&A 전략을 총괄하고 딜을 주도하는 재무자문 부문(발표기준) 지난해 1위는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이었습니다. 본계약을 체결하는 경영권 거래(사업부 및 영업양수도 포함)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헤아렸을 때 CS는 지난해 총 11건, 금액으로 17조1494억원 규모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작년 큰딜 대부분은 이경인 CS IB 대표의 손을 거쳤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것도 CS, 저것도 CS가 다 하면 다른 IB는 뭘 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물로 나온 모트롤BG(4500억원), 두산솔루스(6986억원), 네오플럭스(730억원) 등의 매각 자문을 맡았습니다.

대한항공이 내놓은 기내식 및 기내면세품 사업부(9906억원)의 매각 자문사로서 한앤컴퍼니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지요. 아시아나항공 매각 주관사로서 HDC현대산업개발과의 거래는 무산됐지만 대한항공과의 거래(2조6000억원)를 성사시키는 데 기여하면서 결국 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2017년 이 대표 취임 후 CS는 한경 리그테이블에 3번이나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재무자문 2위는 박장호 대표가 15년째 이끌고 있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총 4건, 12조2806억원)이었습니다. 지난해 최대 빅딜인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 건을 성사시킨 주역이지요. 2019년 6월부터 SK하이닉스와 인텔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습니다. 씨티는 산업·의료용 폐기물업체인 ESG그룹 매각(8750억원)과 3분기 빅딜로 꼽힌 환경폐기물업체 EMC홀딩스 매각(1조500억원) 등도 맡았습니다.

10조원 규모의 인텔 메모리 인수 건은 지난해 재무자문 외에도 회계실사, 법률자문 등 M&A 관련 리그테이블 전체를 뒤흔드는 요소였습니다. 인수전에서 SK하이닉스를 대리한 씨티 및 인텔 측을 대리한 BOA(옛 메릴린치)는 물론, 인수 자금조달 등에서 추가적인 역할을 하기로 한 CS와 도이치증권도 이 거래를 바탕으로 높은 순위에 올랐습니다.

삼일PwC의 약진도 눈에 띄는 부분이었습니다. 글로벌 IB들 사이에서 당당히 재무자문으로 5위를 차지했습니다. 삼정KPMG도 9위(17건,2조1399억원)에 들어 회계법인의 역할 확대를 보여줬습니다.
[한경 CFO Insight] 지난해 M&A시장 최고 플레이어는 크레디트스위스
◆법률자문은 "역시 김앤장"

법률자문 분야에서는 김앤장법률사무소가 모두 30조2228억원 규모의 경영권 거래들에 참여하면서 명실상부한 1위임을 자랑했습니다. 거래 건수로도 62건을 성공시켜 다른 로펌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에서 SK하이닉스 측의 법률 검토를 도왔습니다. 또 KB금융그룹의 푸르덴셜생명 인수(2조2650억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2조6000억원)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 로봇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9558억원) 등을 자문했지요. 김앤장의 자문을 받은 한 고객은 "김앤장은 본계약 체결뿐만 아니라 거래를 완성할 때까지 완벽하게 자문을 돕는다"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리스크 요소를 알려줄 때는 '이래서 김앤장이구나' 싶을 정도"라고 평가했습니다.

태평양이 이어서 14조7914억원으로 2위, 광장이12조209억원으로 3위에 올랐습니다. 10조원 이상을 기록한 톱 3개 로펌이 M&A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뚜렷합니다.

회계실사 분야에서는 EY한영이 10조원 규모의 SK하이닉스-인텔 거래에 참여하면서 1위를 거머쥐었습니다. EY한영은 총합 14건, 14조4711억원 거래에서 기업 매도자, 매수자들의 재무제표에 대한 실사를 자문했습니다. 삼일PwC가 2위, 삼정KPMG가 3위를 차지했고요. 딜로이트안진도 7조원 이상의 실사를 담당하면서 분투한 한 해였습니다.

인수금융 시장에서는 삼성증권(2조757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4건의 인수금융과 7건의 리파이낸싱 거래 실적을 올렸고요. 1조5300억원 규모의 대성산업가스 인수금융 등 주요 조 단위 규모 거래를 주선한 영향이 컸습니다.

이어 NH투자증권이 11건의 거래에 대해 1조8220억원의 주선 실적으로 삼성증권을 바짝 뒤쫓았습니다. NH투자증권은 한앤컴퍼니가 인수한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부 거래에 대해 50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을 단독 주선해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3위에는 1조7107억원 규모로 KB증권이, 4위에는 1조6657억원 규모로 미래에셋대우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KB증권은 하반기에만 무려 9건의 거래를 주선하며 선두권에 진입했답니다.

◆ECM 규모 작년 2배로..한투 4년만에 1위

지난해 ECM 시장은 '대호황'이었습니다. 국내 IB들의 ECM 대표주관 실적은 총 11조9467억원으로 전년보다 90.0%나 늘었습니다. 특히 유상증자 대표주관 실적이 6조7390억원으로 154.0% 증가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증자 추진 분위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지요.

한국투자증권은 29건, 2조9005억원어치 거래를 대표주관하며 2016년 이후 4년 만에 1위를 탈환했습니다. 두산중공업과 대한항공, 에이치엘비, 두산퓨얼셀 등 대형 유상증자를 잇달아 맡은 덕분입니다. 한투는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빅히트와 카카오게임즈를 비롯해 올해 15건의 IPO를 성사시켰습니다.

2위는 2조2833억원의 실적을 낸 NH투자증권이었습니다. 2017~2019년 3연 연속 1위를 차지했던 NH투자증권은 지난해 3분기까지도 1위를 달렸습니다. 다만 4분기에 다소 주춤하며 2위로 내려앉았습니다. NH는 작년 IPO 최대어인 빅히트와 SK바이오팜 상장을 대표주관했습니다.

뜨거운 공모주 투자열기로 IPO 주관사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IPO 대표주관 실적 순위는 NH투자증권(8718억원·13), 한국투자증권(8584억원·15건), 미래에셋대우(7308억원·18건),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3118억원·1건), 삼성증권(2751억원·6건) 순이었습니다.

◆'비교불가' KB증권, 8년 연속 DCM 1위

코로나19 여파로 얼어붙었던 저신용 회사채 시장은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등의 가동으로 빠르게 안정됐습니다. 시장이 크게 출렁이며 유동성 경색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늘었습니다.

KB증권이 올해 567건, 23조2548억원어치 채권(은행채·특수채 제외)을 찍어 8년 연속 채권발행시장(DCM) 1위에 올랐습니다. KB증권이 주관한 회사채 발행 규모는 전년보다 9% 더 늘었습니다. 일반 회사채와 여신전문금융회사채, 자산유동화증권(ABS) 등 주요 분야에서 고르게 성과를 내며 여유롭게 1위 자리를 수성했습니다.

일반 회사채시장에서 SK그룹과 현대차그룹 등의 '큰 손'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조달에 대부분 주관사로 참여하며 1위를 지켰습니다. 첫 회사채 공모를 한 넷마블과 이지스자산운용 등의 채권 발행도 맡아 성공시켰습니다. 롯데지주와 현대캐피탈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채권 발행을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417건, 19조8686억원어치 채권 발행을 대표로 주관했습니다. 여신전문금융채권 부문에선 KB증권을 제치고 가장 많은 발행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399건, 15조8376억원어치 채권 발행을 주관해 전년과 같은 3위를 기록했고요. SK증권(348건·9조7501억원)은 5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습니다.

한양증권이 125건, 6조7309억원의 실적을 내면서 미래에셋대우를 밀어내고 리그테이블 집계 이래 처음으로 5위권에 진입했습니다. 2019년 실적은 45건 2조5775억원에 불과했으나 1년만에 실적이 2배 이상 증가했네요. 2019년 4위였던 미래에셋대우는 실적 부진으로 5위권 밖으로 밀려난 게 눈에 띕니다.

김리안/임근호/이현일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