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8일 한은이 이례적으로 금융위를 정면 비판하는 자료까지 낼 정도로 양 기관 간 갈등은 커지고 있다.

갈등의 단초는 금융위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제출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다. 금융위는 이 개정안을 의원 입법 형식으로 발의할 것을 요청했다. 개정안에는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신설하고, 금융위가 전자지급거래청산업체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 및 검사 등의 권한을 갖겠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현재 전자지급거래청산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는 금융결제원이다. 이 때문에 개정안에는 금융결제원 등에 대한 임원 징계권, 업무 지시권, 인사 거부권 등의 권한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관리하겠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라며 한은이 반발하는 이유다.

현재 지급결제제도 운영은 한국은행의 고유 업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한은법 28조에 따라 지급결제제도의 운영·관리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한은은 이를 근거로 “금융위가 마련한 개정안은 한은의 권한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중복 규제에 해당한다”며 “중앙은행의 고유 업무를 침해하는 해당 조항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지급결제 시스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최종 대부자인 중앙은행이 지급결제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연합, 영국, 스위스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도 지급결제제도는 중앙은행이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네이버페이를 비롯해 핀테크(기술금융) 업체들의 결제 거래 규모가 커지는 상황 등에 대비해 지급결제제도 운영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은과 개정안 관련 협의를 이어나가겠지만 뜻을 굽힐 생각은 없어 보인다.

금융계에선 금융위의 개정안 추진은 금융결제원 원장 자리를 자기 사람으로 채우기 위한 계산도 깔려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위한 자리를 더 마련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관측은 1986년 금융결제원 설립 이후 한은 출신이 줄곧 원장 자리를 맡아 오다 지난해 처음으로 한은 출신이 아닌, 김학수 전 금융위 상임위원이 원장에 선임되면서 더 힘을 얻고 있다. 관피아 논란은 과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에 이어 최근엔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로도 확산되고 있다.

물론 금융위는 이런 관측이 사실이 아니라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위는 개정안에 ‘금융결제원장 자리에 관피아 출신을 선임하지 않겠다’는 규정도 넣으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