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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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낸드플래시 업체 기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의 상장(IPO)이 미·중 갈등 여파로 중단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몰래 웃고 있다. IPO를 통해 성장 발판을 마련하려는 기옥시아의 시도가 잇따라 좌초되면서 1위 삼성전자는 안도를, SK하이닉스는 2028년 이후 경영권 인수를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

전날인 28일 기옥시아홀딩스는 다음달 6일로 예정한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연말이나 연초로 상장 시기를 다시 조율할 계획이다. 미국이 지난 15일 중국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 제재에 돌입하면서 화웨이에 스마트폰용 플래시메모리를 납품하는 기옥시아가 직격탄을 맞았다.

실적악화를 고려해 공모가를 3980엔(약 4만4071원)에서 2800~3500엔까지 낮췄지만 신주 물량의 86%를 배정한 해외 기관투자가의 반응은 싸늘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부 헤지펀드의 경우 기옥시아의 적정가격을 2000~2500엔 수준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낸드플래시 세계 1위 삼성전자가 2위 기옥시아의 상장 중단에 미소짓는 것은 당연하다. 기옥시아의 연간 설비투자 규모는 3000억엔 수준인 반면 삼성전자는 엔화 기준으로 2조엔에 달한다. IPO로 자금을 조달해 설비투자를 늘릴 기회가 늦춰짐에 따라 현재의 격차가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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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2위 전략'을 통해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던 구상도 틀어지게 됐다. 전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점유율 35.9%), 기옥시아(19%), 웨스턴디지털(13.8%), 마이크론테크놀로지(11.1%), SK하이닉스(9.9%)의 순으로 이뤄져 있다. 기옥시아는 웨스턴디지털과 연구개발과 생산라인을 공유하고 있고, SK하이닉스와는 지분관계로 엮여 있다. 합계 점유율이 42.7%에 달하는 세 회사가 느슨한 동맹관계를 구축하면 삼성전자에 맞설 수 있다는게 기옥시아의 계산이었다. 특히 일본 경제산업성은 기술력이 뛰어난 기옥시아가 자금력까지 확보하면 2위 동맹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기옥시아의 주주인 SK하이닉스가 IPO 중단을 반기는 건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SK그룹은 2018년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공동 투자자로 참여해 기옥시아에 3950억엔을 투자했다. 2660억엔은 베인캐피털의 펀드에 출자했고, 1290억엔은 전환사채(CB) 형태로 투자했다. 현재 보유 CB는 7740만주로 보통주로 전환할 때 지분율은 14.96%다. 기옥시아의 주주는 베인캐피털(56.2%), 도시바(40.6%), 호야(3.1%)등으로 구성돼 있다.

인수 당시 맺은 계약에 의해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는 기옥시아 지분을 15% 이상 보유할 수 없다. 2028년 이후에는 지분을 15%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일부 반도체 업계에서는 기옥시아의 상장이 계속해서 지연되고 급부상하는 중국 업체에 추격을 허용해 자체적인 경쟁력을 잃게 되면 SK하이닉스가 인수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SK그룹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기옥시아를 인수할 수만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일본 정부가 가만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도시바메모리가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더구나 한국의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가 주주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최대주주인 베인캐피털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엑시트)해야 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기옥시아의 공회전이 길어질 수록 SK하이닉스에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