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실패를 견딘다는 것은
삶에서나 사업에서나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는 결국 시간과 돈, 신뢰, 또 체면의 상실이니 말이다. 더 나아가 자존감과 의욕까지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꽤 많다. 그런데 한 번도 실패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지나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크게 실패해 본 적이 없다면 진짜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완전한 그리고 지독한 실패를 겪은 뒤에야 다다르는 존재의 가장 어두운 심연은 겪어보지 않고는 가늠하기 어렵다. 완전한 실패는 모든 것을 앗아가고 남는 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 그뿐이다. 그러니 실패는 인간의 조건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업에서 나의 가장 큰 실패는 20년 전, 공동 창업했던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다가 현금 흐름에 신경 쓰지 못한 탓에 거의 쓰러질 뻔했을 때다. 30명이 넘는 직원들에게 앞으로 더 이상 월급을 줄 수 없고, 이미 늘릴 대로 늘린 대출 한도가 다시 한번 늘어나야만 회사가 회생할 수 있다고 말해야 했다.

직원들을 마주할 때 나는 굉장한 외로움과 무력감을 느꼈다. 벌거숭이가 된 것만 같았고, 면목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사업은 다시 회복시킬 수 있었고, 내가 떠났어도 그 사업체는 지금까지 번창하고 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나는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대부분의 경우는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대했으며,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가끔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불행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유의지로 매 순간 결정하며 살아나간다. 그러니 실패라는 것은 잘못된 결정 때문일 수도, 혹은 그저 운이 나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패의 이유야 어떻든 간에 스위스 철학자 페터 비에리의 말을 각색하자면, 나는 실패란 시가 주는 치료의 힘을 통해서만 견딜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실패의 나락에서 헤맸을 때, 나는 아주 다른 두 개의 시에서 깊은 위로를 받고 의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위로를 받았던 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이라는 시인데,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다른 것들을 보라/떨어짐은 모든 것에 있다/그러나 한 분이 있다/이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에 받아주는.’

인내와 자유를 노래한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불멸’도 빠뜨릴 수 없다. 많은 위대한 사람에게 희망을 준 마지막 이 두 구절을 들어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이다.’

릴케의 시에서 우리의 존재도 어쩌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더 큰 계획의 한 부분임을 느꼈다면, 헨리의 시로부터는 좋은 시절이나 어려운 시절이나 자유에 기반한 내 책임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겼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실패에 빠졌을 때 위로와 힘이 되는 시가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