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다시 한번 승소했다. 페이스북이 일부러 접속 속도를 떨어뜨렸다며 방통위가 매긴 과징금에 대해 1심에 이어 고등법원 역시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이 페이스북의 행위에 대해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망 품질 책임은 통신사에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콘텐츠사업자(CP)에 서비스 안정성 의무를 부여한 전기통신사업법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고의로 접속속도 늦춘 페북, 손 또 들어준 법원

법원 “현저한 이용자 피해는 아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부장판사 이원형)는 11일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하지만, 전기통신 이용자에게 현저하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며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2016년 12월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에 사전 고지하지 않고 접속경로를 미국, 홍콩 등으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망 이용료’ 협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고의로 접속경로를 변경했다며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1심 재판부는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긴 했지만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2심의 관건은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쳤는가’ 여부였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자들의 이용을 제한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이용자들은 원고의 본질적 서비스인 게시물 작성과 열람 등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CP에 품질 책임을 법적으로 구속하긴 힘들다”며 서비스 안정성 책임의 무게를 통신사 측에 뒀다.

재판부는 방통위 처분에 대해서도 재량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50에 대해 (처분)해야 하는데, 100으로 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며 “(과징금은) 전부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법’ 시행령에 영향 줄까

고의로 접속속도 늦춘 페북, 손 또 들어준 법원
이번 판결은 통신사와 CP 간 힘겨루기가 팽팽한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현재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망 이용료를 둘러싸고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다음달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도 서비스 안정성 책임과 범위를 놓고 정부, 통신업계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심 때는 CP가 일방적으로 서비스 경로를 변경해 이용자의 피해가 발생해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정부는 이에 따라 CP에도 서비스 안정성 의무를 규정하는 내용으로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했다. 그 대상과 세부 내용에 대한 시행령이 지난 9일 입법예고됐다. 다만 오는 12월 시행될 예정이라 이번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통신사와 CP업계는 적잖은 온도차를 보였다. 통신업계에서는 법원이 ‘이용 제한’으로 판단한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는 것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법원에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의 의의를 반영해줬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CP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에 대한 추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CP 관계자는 “법원이 망 품질 안정성에 대해선 통신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입법예고 기간 동안 시행령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재판부가 현저성에 대해 당시 피해를 입은 이용자의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며 “이용자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조수영/남정민/구민기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