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소설집 '누가 봐도 연애소설' 출간…더 모자란 이들을 사랑하는 이야기

"세상 모든 소설은 다 연애소설이라고 하던데, 나에게 그건 '연애'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 말이라기보단 '소설'을 쓰는 마음에 대한 가르침으로 들린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이 절반이니까.

"
신작 소설집 '누가 봐도 연애소설'(위즈덤 하우스)을 펴낸 중견 작가 이기호의 말이다.

그에게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호승심이나 복수심, 현학적 허세를 충족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쓴다고 한다.

그래야만 "망해버리지" 않고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

또 매일 그런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아끼는 마음이 들게 된다"고 이기호는 말한다.

'누가 봐도 연애소설'은 제목처럼 연애 소설이고 순수 소설인데, 사실 이기호의 경력에서 처음 써내는 연애소설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로맨틱하거나 극적이거나 달콤하거나 가슴 아린 사랑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신 뭔가 모자란, 결핍의 인물들이 자신보다 더 모자란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야기다.

단편 '뭘 잘 모르는 남자'에서 주인공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다.

그런데 스스로 몸을 아래로 던져 죽으려는 순간에도 남들을 걱정하고 아끼는 역설적 장면을 연출한다.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핀 주인공은 일단 에어컨 실외기에 부딪힐까 봐 투신 지점을 조금 바꾼다.

그런데 그 아래엔 고시원 같은 층에 살면서 배송 일을 하는 남자의 차가 있다.

차를 망가뜨릴까 봐 그는 다시 선택지를 바꾼다.

'새벽 배송 일을 하고 있어서 늘 새벽 1시 반에 출근하는 남자. 그 남자는 새벽 배송을 마치면 다시 편의점 알바를 뛴다고 했다.

몇 번 고시원 공용 식당에서 그 남자가 건네는 오징어 젓갈 반찬을 얻어먹은 적도 있다.

남한테 폐를 끼치면 안 되지. 이런 건 보험 처리도 안 될 텐데…. 그는 다시 몇 걸음 옆으로 이동했다.

'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매일 먹는 편의점 직원에게 직접 만든 김밥을 가져다주는 김밥집 청년,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대학 동기에게 큰마음 먹고 돼지갈비를 사주고는 혹시 지원금으로 결제가 안 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남자, 이혼하고 고향에 내려온 첫사랑을 도와주는 시골 노총각.
짧은 소설 30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고, 때로는 삶이 힘들고 초라하지만, 그래서 더 타인에게 사랑을 베푼다.

"비루한 삶도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이기호는 외치는 듯하다.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체를 인정받아온 이기호는 글 자체로 인정받는 영원한 글쟁이를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필명을 날리기보다는 자식과 같은 작품들이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되길 그는 기대한다.

"5년째 한 달에 두세 편씩 꼬박꼬박 짧은 소설을 쓰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매번 무슨 백일장을 치르는 느낌이다.

백일장은 쓴 사람 이름을 가린 채 오직 글로만 평가를 받는 법. 그 마음으로 계속 근육을 단련하고 있다.

이름은 지워지고 이야기만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
1972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이기호는 199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장편 '사과는 잘해요',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