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발(發)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 경제전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미 상무부가 “미국 기술과 장비가 들어간 반도체를 중국의 화웨이에 제공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지난 주말 발표하자 중국이 즉각 맞보복을 예고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애플과 퀄컴, 시스코, 보잉 등 미국 기업을 겨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고 밝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경제번영 네트워크라는 친미 블록까지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과의 교류에 의존하지 말고 다른 선진국들과의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미·중 간 경제전쟁이 터지면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미국은 한국에 각각 1, 2위 교역국이다. 이런 나라들이 서로 교역을 끊고 경제전쟁을 벌이면 사이에 낀 한국은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된다.

특히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가 현실화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수출은 직격탄을 맞는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1, 2위인 삼성과 하이닉스가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할 때 미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수출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자의든 타의든 한국 기업의 이 같은 대중 제재 동참은 중국의 경제 보복을 부를 것이다. 이미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 우린 중국으로부터 심각한 경제 보복을 당했고, 그 여파는 아직도 남아 있다.

미·중 간 경제전쟁의 직접적 피해자가 될 한국 기업들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미·중 분쟁으로 한국에 튈 불똥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어떤 전략과 대책을 갖고 있는지 몰라 냉가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통화에서 드러났듯이 시 주석 방한에만 매달리는 인상을 주고 있다. 외교부와 통상교섭본부 등이 미·중 경제전쟁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정리하고 대응 전략을 짜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미·중 경제전쟁은 단순한 통상 차원을 넘어 한국의 외교·안보와도 연결돼 있다. 그런 만큼 신중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는 방향의 외교가 긴요하다. 미국의 대중 제재 동참 요구엔 한국의 특수성을 설명해 대중 수출 타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 미국의 대중 수출 제한에 동참할 경우에도 중국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충실히 해 경제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기업과 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원칙 하에 모든 외교 역량을 동원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