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2만6000명을 넘어섰다. 미국과 이탈리아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면서 봉쇄조치가 점진적으로 해제되고 있지만 영국은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백명의 사망자가 연일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도 영국 정부는 마스크 착용 권고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보건당국에 따르면 영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지난 28일 오후 5시 기준 2만6097명으로 집계됐다. 전날(2만1678명) 대비 4419명 증가했다. 다만 이날 발생한 신규 사망자가 4419명이라는 뜻은 아니다. 영국 정부는 이날부터 요양원 등 지역사회 사망자도 포함한 통계를 내놓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지금까지 병원 내에서 사망한 환자만 공식 통계로 집계했다.

도미닉 라브 외무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요양원 등 사망자 수치를 소급적용한 데 따른 것으로 하루 새 갑자기 사망자가 급증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종전 기준인 병원 내 사망자 통계만 감안한다면 이날 하루새 신규 사망자는 765명이다.

영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이날 기준 미국(6만640명)과 이탈리아(2만7682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라브 장관은 “바이러스의 정점이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며 “영국은 여전히 위험한 순간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당초 영국 정부는 이달 말까지 코로나19 일일 검사역량을 10만건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날 기준 코로나19 누적 검사건수는 81만8539건으로 하루 동안 5만2429건 증가하는 데 불과했다. 영국은 그동안 검사역량 부족으로 인해 병원 입원 환자 중심으로 검사를 진행하다가 이후 의료서비스 인력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영국 정부는 마스크 착용 여부를 놓고도 혼선을 빚고 있다. 정부는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감염을 막는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이달 들어 상당수 유럽 국가들이 일반인의 마스크 사용을 권장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자 재검토를 진행했다.

정부 최고과학보좌관인 패트릭 발란스 고문은 지난 12일 “마스크는 쓴 사람의 감염을 막기보다는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좀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도 지난 28일 “제한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을 접촉하거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기 어려우면 마스크나 스카프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맷 핸콕 보건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할 만한 과학적 증거가 약하다”며 “마스크와 관련한 중앙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정부 등이 잇달아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일간 가디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영국 정부가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봉쇄조치 도입을 늦추는 등 안이하게 대응하면서 사태가 악화됐다”며 “결국 정부가 당초 내세웠던 집단면역이라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단면역은 감염병에 대한 면역을 가진 사람들의 비중을 높여 바이러스 유행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