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연일 급락하면서 산유국들에 비상이 걸렸다. 원유는 국가 재정의 생명줄이어서다. 재정이 비교적 넉넉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2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사우디는 유가가 배럴당 76.1달러는 돼야 재정적자를 안 본다. 아랍에미리트(UAE)는 69.1달러, 쿠웨이트는 61.1달러가 재정균형 유가다. 지금과 같은 10~20달러대의 유가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은 그간 석유를 팔아 쌓아둔 자금으로 유가 폭락기를 버틸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 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은 대규모 국부펀드를 굴리고 있다. 포브스는 “중동 부국들은 국부펀드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출을 늘려 일단 경제 타격을 완화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는 최장 10년간은 배럴당 25~30달러 유가를 버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240억달러 규모 국부펀드를 두고 있어 한동안 이를 방패막 삼아 유가 전쟁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정보업체 애큐티데이터에 따르면 이 경우 러시아는 매년 400억~500억달러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러시아는 우랄산 원유가 배럴당 42.4달러에 팔린다는 전제를 두고 올해 예산안을 마련했다.

데이브 엔스버거 S&P글로벌플래츠 글로벌상품담당은 “사우디와 러시아가 승리하고 있다”며 “한동안 눈엣가시였던 미국 셰일업계가 먼저 타격을 받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크리스티안 말렉 JP모간 원유·가스부문총괄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승기를 잡았다”며 “주요 산유국 중 제일 먼저 증산을 시작해 가격이 폭락하기 직전까지 원유를 대량으로 팔아치웠고, 다음달엔 감산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사우디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원유 전쟁에서 순순히 물러날 가능성은 낮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가 폭락세를 잡지 못할 경우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사우디가 얻는 게 더 많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