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 등 대도시 주택시장 이상 과열…인민은행 긴급 실태 조사
2008년 초대형 부양 후 부동산 급등 '학습효과'도 강해
중소기업 살리려 돈 풀었더니 부동산으로…중국 당혹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에 빠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도우려 싼 이자로 자금을 공급하자 난데없이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최저 연 2%의 저리로 돈을 빌려 간 중소기업인들과 개인사업자들이 사업 목적으로 쓰는 대신 주택을 사들이고 있어서다.

정부의 취약 대상 금융 지원이 도리어 부동산 투자의 지렛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어서 중국 당국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21일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인민은행 선전지행은 전날 관내 은행에 부동산 담보 경영 자금 대출 현황을 조사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집중 조사 대상은 경영 자금으로 쓰겠다고 빌린 돈으로 다른 주택을 새로 사들이는 행위다.

금융 당국이 긴급 조사에 나선 것은 최근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를 지원하는 정책 자금이 주택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시장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어려움이 가중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에게 금융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중소기업인들이나 개인사업자들은 자신의 주택 등 부동산을 담보로 사업 자금을 낮은 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다.

선전 주요 은행 지점에서는 담보물인 주택 가격의 70%까지 대출을 해준다.

대출 금리는 통상 연 3.9∼4.5%이지만 나라 재정이 투입된 중소기업 이자 지원 혜택을 적용하면 2%까지 낮아진다.

주택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기 쉬워지면서 중소 기업인들과 개인사업자들이 주택을 추가로 구매하기가 쉬워졌다.

차이신은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기존 집을 담보로 잡고 새집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지만 먼저 새집을 사고 차후에 이르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이 서류상 회사를 차리거나 사들이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지원 자금을 주택 구매 자금으로 활용하는 편법도 있다.

시장에 자금이 새로 유입되자 선전시의 주택 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3월 선전의 신규 주택 및 중고 주택 가격은 전달보다 각각 0.5%, 1.6% 올라 중국의 4대 '1선 도시'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극심한 경기 침체 현상 속에서 주택 시장의 과열 조짐은 선전시 한 곳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상하이의 부동산 정보 업체인 윈드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중국의 30개 주요 도시의 3월 주택 거래 규모는 총 860만㎡로, 지난 2월의 233만㎡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기본적으로는 1∼2월 코로나19 확산 탓에 전면 중단된 부동산 시장이 다시 정상화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여지가 있지만 선전, 항저우, 난징, 청두 등 주요 도시에서는 수조원대의 자금이 몰려들면서 신규 분양 아파트 수백채가 순식간에 매진되는 이상 과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아직은 국지적인 수준이지만 극심한 경기 침체기에 일부 지역에서의 주택 시장 과열 조짐이 나타나는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주택 가격 급등 현상에 대한 '학습 효과'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4조위안대의 강력한 경기 부양책으로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에 과도한 유동성이 유입되면서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중국이 코로나19 경기 극복을 위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상의 경기 부양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을 예고한 가운데 결국 넘치는 유동성이 주택 가격을 다시 한번 끌어올릴 것이라는 '베팅'한 투자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향한 맞춤형 자금 지원에 주력하고 있는 중국 정부로서는 저리 지원 자금이 억제 대상인 주택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어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국민들의 평균 소득보다 지나치게 높은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중국 당국의 정책 공간을 제약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에도 미국 등 서방 선진국 같은 공격적인 통화 완화 정책을 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경제 전반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통화 팽창이 부동산 시장 급등을 다시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