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루블화 가치 급락…유가 폭락·코로나 겹악재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약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주요 산유국 간 원유 감산 합의 무산에 따른 결과다.

9일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국제 외환시장에서 러시아 루블화의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은 73.47루블을 기록했다. 지난 6일(68.57루블)에 비해 7%가량 올랐다. 달러당 루블화 가치가 73루블을 넘긴 것은 2016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유로화 대비 루블화 환율은 83.77루블로 2016년 2월 이후 가장 높았다. 유로화는 6일엔 75.84루블 수준에 거래됐다.

현지 언론 모스크바타임스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간 유가 동맹이 깨지면서 루블화 가치가 확 깎였다”고 분석했다. 이날 러시아 우랄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33.92달러로 전장에 비해 25% 폭락했다. 러시아는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환율 타격이 크다는 설명이다.

앞서 러시아와 사우디 등은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주요 산유국 간 회의에서 원유 감축안에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에 사우디가 협상력을 올리겠다며 공격적 증산 카드를 꺼내 들면서 국제 유가가 급락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비상대책으로 국내 시장에서 향후 30일 동안 외화를 매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국제 원유시장의 급격한 변동 상황에서 금융시장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며 “상황에 따라 추가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예산정책 차원에서 재무부의 의뢰로 유가가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 그에 따른 추가 소득분의 달러를 매입해 왔다.

같은 날 러시아 재무부도 대책을 내놨다. 재무부는 외환보유액 일부를 매각해 루블화 가치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쌓아둔 외화가 많아 외부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더 내릴 경우 루블화 환율이 달러당 80루블까지 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항공·제조·운송업 등에서 원유 수요가 확 줄어든 것도 추가 유가 하방 압력 요소로 꼽힌다.

올해 러시아 예산은 우랄산 원유가 배럴당 42.4달러에 팔린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우랄산 원유 가격이 예산안을 짤 때 가정한 것보다 낮아질 경우 러시아는 정부 지출 자금을 대기 위해 상당한 재원을 새로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