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편집자주] 공매도는 국내 증시에서 수년째 '뜨거운 감자'다. 코로나19에 따른 급락장세에 공매도 폐지 목소리는 다시금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 도입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금융위원회는 난색을 표하는 등 금융당국도 엇박자다. <한경닷컴>은 반복되는 공매도 논란과 시장 안정화 방안을 들여다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 사태로 금융시장이 급변동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위기 상황에선 공매도가 시장의 의구심을 증폭시킬 수 있어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규제가 필요합니다. 위기가 진정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 합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사진)은 10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가 공매도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황 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먹는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선 정부가 적극적인 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가능성에 유가급락 공포까지 더해진 지금 상황에서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시장에 형성된 공포감과 불합리한 변동성을 조정해 줄 수 있는 장치를 추가로 내놓는 것도 필요하다"며 "정부와 금융당국이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가능성도 열어놔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두 차례 시행됐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때는 10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8개월 동안 전 종목의 공매도가 금지된 바 있다.

◆정부,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확대 결정

이날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국제유가 급락 등에 따른 증시 하락장에 대응하기 위해 3개월 간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요건을 완화하고, 공매도 거래금지 기간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제도'를 도입한 후 5년 만에 공매도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제는 공매도가 비정상적으로 급증해서 주가가 급락한 종목을 장 종료 후 걸러내 '공매도 과열종목'으로 지정, 다음 날 하루 동안 공매도 거래를 제한하는 제도다. 현행 공매도 과열종목은 공매도 거래대금 증가율이 여섯 배(코스닥은 다섯 배)를 넘고 주가 하락률이 10% 이상인 경우다.

이번 결정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거래대금 증가율이나 주가 하락률 등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기준을 확대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과열종목의 공매도 금지 기간을 현행 하루에서 단계적으로 이틀 이상 늘리는 것도 계획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연구위원은 한시적 공매도 금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또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금융투자협회 등 증권 유관기관이 주요 출자자로 참여하는 증시안정펀드(증안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카드라고 봤다.

그는 "통상 증안펀드가 나오는 시점은 증시가 저점인 상황이었으므로 조성된다면 투자자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 경험 상 수익률도 나쁘지 않아 증권 유관기관들이 참여에 부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 도입되면 테마주 기승부릴 것"

황 위원은 금융당국이 시가총액 일정 수준 이상인 종목만 공매도가 가능토록 지정하는 이른바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려했다. 일시적인 위기 상황에서 공매도를 규제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중장기적인 정책 방향에 공매도 규제를 포함하는 것은 자본시장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판단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홍콩처럼 공매도가 가능한 종목을 한국거래소 같은 공적 기관이 지정하는 공매도 지정제 도입을 금융위원회에 제안했다. 현재 홍콩 금융당국은 시총 30억홍콩달러(약 4580억원) 이상이면서 12개월 동안 회전율이 60% 이상인 종목을 공매도 가능 종목으로 지정해 허용하고 있다. 나머지 종목은 공매도가 불가능하다. 홍콩거래소가 수시로 지정 종목을 점검해 변경한다.

황 위원은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가 도입된다면 주가가 떨어지는 속도를 완화시킬 수는 있다"면서도 "공매도 가능 종목에 해당하지 않아도 코로나19 사태처럼 돌발 악재가 발생할 경우 주가 하락은 불가피 해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증시는 특정 종목에 거품이 잘 형성되는 시장"이라며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도가 도입되면 코스닥 시장의 대부분 종목에 대해 공매도가 금지될 가능성이 높아 테마주가 더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 영향을 줄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관련 테마주에는 거품이 빠르고 강하게 낀다. 테마주가 과열된 상태에서 공매도가 진행되면 거품이 신속히 사라질 수 있지만, 공매도가 없어지면 거품이 천천히 빠져 주가가 내재가치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게 황 위원의 판단이다. 즉 거품이 천천히 빠지는 동안 왜곡된 주가는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매매판단을 내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공매도 접근 불공정성 해소해야"

황 위원은 공매도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왜 높아졌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봤다.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이 발생하는 공매도 특성상, 주가 하락 시기에 공매도가 뚜렷하게 증가하다보니 많은 투자자들이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범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황 위원은 "공분을 샀던 삼성증권 배당착오 사건, 골드만삭스 무차입 공매도 사건 등도 엄밀히 보면 불공정거래행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선 공매도를 폐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불공정거래 행위를 시도한 자들을 색출해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합리적 대응이라고 봤다.

공매도는 증시의 거품 형성을 막고 시중 자금(유동성) 공급을 확대시키는 순기능이 있다. 시장의 효율성 유지를 위해서라도 폐지돼선 안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공매도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선 '접근에 대한 불공정성'을 해소해야 된다고 봤다. 현재 공매도는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의 전유물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공매도가 제도적으로 허용돼 있음에도, 신용도 문제로 인해 개인들은 주식을 빌리기 어렵다.

황 위원은 "개인이 공매도를 일상적인 투자기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개인의 공매도 참여가 활발한 일본의 사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일본 증권업계는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대여 서비스를 적극 제공하고 있다. 종목과 수량에 대한 제한도 거의 없어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 거래 기법을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이 정착된 배경에는 중앙집중기관이 대주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증권사들이 중앙집중기관으로부터 주식을 차입해 고객에게 주식대여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용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우리도 개인에게 주식을 빌려줄 수 있는 공적 금융기관을 지정해 육성해야 한다"며 "개인의 신용위험 관리 문제는 현재 시행 중인 '신용거래 융자'에 적용되는 기법을 적용시키면 된다"고 설명했다.

신용거래 융자는 증권사가 주식 매수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 때 사용하는 개인 신용도 관리 체계를 반영하면 된다는 판단이다.

◆불합리한 과세 체계도 문제…증권거래세 폐지해야

황 위원은 투자자들에게 불합리한 과세 체계도 서둘러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주식·펀드·채권 등 금융투자상품 간 손익을 통산해 일괄적으로 과세하는 내용을 담은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추진이 더딘 상황이다.

그는 증권거래세의 경우 점진적으로 인하한 후 폐지하는 게 맞다고 봤다. 당초 증권거래세는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또 양도소득세를 걷기 위한 조세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체적인 조세수단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손실이 나더라도 주식을 팔면 무조건 증권거래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일본 홍콩 등 여러 국가들은 소득이 없는 주식 매도에 대해서는 과세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 아래 증권거래세를 인하 및 폐지하고 있다. 때문에 증권거래세는 투자자들을 해외로 이탈시키는 요인으로도 지적돼왔다.

황 위원은 "투기억제 기능을 가진 증권거래세는 유동성 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지금 시장 상황과는 맞지 않다"며 "또 지금은 양도소득세에 대한 시장 인프라도 충분히 갖춰져 있어 증권거래세의 방향은 폐지가 옳다"고 했다.

이어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포괄적인 손익통산 역시 개편안대로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괄적 손익통산은 각 금융상품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모든 금융투자상품의 손익을 합해 순소득에만 과세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선 포괄적 손익통산을 시행 중이다. 미국은 전체 양도손익을 통산 후에 이자·배당 등과 합해 연간 3000달러까지 손익통산을 허용한다. 일본은 주식, 채권, 펀드에서 발생하는 이자·배당·양도금액에 대해 포괄적 손익통산을 시행 중이다.

채선희/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