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술협력단 세워 R&D 육성, 병원에 창업지원 조직 허용해야"
“지금은 병원 교수나 연구자가 창업하려면 개인 창업을 해야 합니다. 이를 뒷받침해줄 조직 없이 혼자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창업을 시도하기 어려운 구조죠.”

김종재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장(병리과 교수·사진)은 “병원에 의료기술협력단을 세우는 것은 병원 연구개발(R&D) 육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의료기술협력단은 각 대학에 설립된 산학협력단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조직이다. 병원의 연구비와 연구조직, 인력을 관리하고 기술지주회사를 세워 병원 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창업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의료법에 따라 병원은 기술지주회사를 포함한 자회사를 세우는 것이 엄격히 금지된다. 이 때문에 고려대안암병원, 고려대구로병원 등 학교법인 산하 병원은 대학에 기술지주회사를 차려 창업을 지원한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같은 재단·사회복지법인 소속 병원은 국내 법인 지분을 5% 넘게 보유할 수 없도록 한 상속증여세법 때문에 창업 지원 조직을 만들 수 없다. 이들 병원 의료진은 의사 개인이 책임지고 회사를 세우는 교수 창업을 주로 한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의료기술협력단 개설을 허용하는 내용의 보건의료기술진흥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의료 영리화를 부추길 것이라는 시민단체 반대 때문이다. 김 연구원장은 “대학마다 산학협력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학이 영리화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병원에 같은 제도를 운영하면 영리화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그는 “병원에 창업 지원 조직이 생기면 진료 수준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더 유리하다”며 “이를 활용해 의료비를 절감하게 되면 결국 혜택은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산학협력단을 운영하는 대학, 교육부 등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연구비가 상대적으로 많은 병원에 별도 조직이 설립되면 그만큼 대학과 교육부의 영향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장은 “맞춤의료가 도입되면서 개인마다 특성화된 치료를 받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처럼 산학협력단도 연구기관과 단과대학마다 세분화돼 특성에 맞는 작고 빠른 조직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지금은 축구화가 있으니 축구화를 신고 농구 경기에 뛰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바이오헬스 기업 창업을 위해선 병원 교수가 개인 자금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자본의 옥석을 가리기 어렵고 수익을 내기 위해 부풀리기를 하는 일도 흔하다”며 “병원이 참여하면 좋은 기술을 가려내기 쉽고 창업 회사도 병원이라는 든든한 후견인을 둘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