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1990년에 전 세계 시장의 49%를 휩쓸었다. 10대 기업 순위에서도 NEC(1위), 도시바(2위), 히타치제작소(4위), 후지쓰(6위) 등이 상위권을 독식했다. 그러나 잇따른 투자 지연과 한국·대만 등의 추격에 밀려 주도권을 빼앗겼다. 지난해 일본 기업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7%에 불과했다.

NEC와 히타치제작소가 공동 설립한 엘피다메모리는 2012년 파산했다. 도시바는 지난해 반도체사업부문을 매각했다. 파나소닉도 최근 반도체사업을 대만의 누보톤테크놀로지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미지센서를 생산하는 소니 정도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사이에 세계 반도체 시장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등이 석권했다. 삼성전자는 1983년 이병철 창업자의 ‘도쿄 선언’ 이후 매년 신규 D램 라인을 신축하는 과감한 투자로 10년 만에 일본을 따라잡았다. 1992년 D램 시장 1위에 이어 2002년에는 낸드플래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도쿄 선언’ 당시 미쓰비시연구소가 ‘삼성이 반도체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비웃던 일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도체 시장 주도권이 바뀐 과정을 보면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며 “과감한 선제 투자와 기술 개발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만은 파나소닉 반도체사업을 넘겨받기로 한 누보톤과 올해 초 후지쓰의 반도체 공장을 인수한 UMC 등을 필두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중국은 더 무서운 기세로 추격 중이다. 낸드플래시 양산 업체인 국유기업 YMTC 등에 2025년까지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하며 삼성의 주력 D램사업을 쫓고 있다. 3D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올해 64단 양산에 이어 90단을 뛰어넘고 내년엔 128단으로 직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중국 반도체 제조업 매출 증가율은 25.6%에 달했다.

첨단 반도체산업의 부침과 흥망에는 국가 경제의 미래가 투영돼 있다. 10년, 20년 후 ‘반도체 제국’의 진정한 승리자는 누구일까.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의 미래 모습은 어떨까. 중국은 ‘반도체 굴기’에 성공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