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불어 섞어 쓰는 '프랑글레' 사용자제 촉구…"프랑스어 위상 약화 우려"
프랑스 한림원(아카데미 프랑세즈)이 정부와 공공기관, 공직자들에게 영어식 표현을 쓰지 말라고 촉구했다.

일명 '프랑글레'(franglais)로 불리는 영어 차용 표현이 프랑스어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2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우리는 외래어 도입과 사용에 적대적이었던 적이 없지만 '프랑글레'의 확산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모든 정부 문서와 상업 계약, 광고 등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한 이른바 투봉법(1994년 제정)이 '앵글로색슨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주 위반되고 있다는 것이 한림원의 판단이다.

특히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공공기관과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서 법을 지켜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대중들도 따라 하게 돼 향후 불어의 위상이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프랑글레'는 프랑스어(francais)와 영어(anglais)를 합친 말로, 영어를 섞어 쓰는 프랑스어 표현을 통칭한다.

전통적으로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클릭'(click), '콜렉트'(collect), '베이비시터'(babysitter), '해피'(happy) 등 일상 표현에서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네' 또는 '그렇다'는 뜻인 위(Oui) 대신에 영어로 그냥 예스(yes)로 답해버리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파리에서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프랑스어로 답한다'는 항간의 속설도 거의 사실이 아니다.

파리 등 프랑스의 대도시나 유명 관광지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프랑스어로 길을 물어도 외양상 관광객이나 외국인으로 보이면 영어로 대답하는 시민들도 많다.

1635년 설립돼 400년에 가까운 전통을 가진 프랑스어·학술 진흥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불어 지키기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학술원 정회원이 된 철학자 바바라 카상은 지난 10월 입회 연설에서 영어의 글로벌화를 비판하면서 프랑스어 보호 노력 필요를 역설한 바 있다.

영어에 능통해 영어권 국가 방문 때나 국제회의에서 연설 전체를 영어로 하기도 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불어 진흥을 프랑스 문화정책의 주요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마크롱은 작년 3월 20일 국제 프랑코포니(불어사용권)의 날을 맞아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한 연설에서 불어 진흥을 위한 30개 대책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에 들어온 난민들에게 무료 불어 강습을 현 250시간에서 400∼600시간으로 늘리고, 외국의 프랑스학교 설립도 확대하고 있다.

마크롱은 2016년 프랑스 최고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은 여성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를 취임 첫해인 2017년 11월에 프랑스어 진흥 특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