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이란이 휘발유 가격을 50%나 대폭 인상했다.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에 차질을 빚어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올해 -9.5%의 대규모 역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이란 시민들은 급격한 휘발유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등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빅4 원유국' 이란, 휘발유 값 50% 기습 인상…전국서 反정부 시위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날 이란에서는 전날부터 이어진 반정부 시위로 주요 도시가 마비되고 전국 곳곳에서 시민과 경찰 간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수도 테헤란에서는 시민들이 주요 도로를 막고 은행과 상점 등을 공격했다. 국영 IRNA통신은 “15일 밤 이란 중부 시르잔에서는 시민들이 연료 창고를 공격해 불을 지르려 했으나 경찰이 저지했다”고 보도했다. 시위 발생 후 이란에서는 최소 6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정부가 지난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밤 12시에 “휘발유 가격을 50% 인상한다”고 기습 발표한 것이 반발을 일으켰다. 이란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과거 L당 1만리알(약 100원)이던 휘발유 가격을 1만5000리알로 올렸다. 개인이 구매할 수 있는 휘발유량도 월 60L로 제한했다. 이를 초과해 휘발유를 살 때는 L당 3만리알을 내야 한다.

이란 정부의 휘발유 가격 인상은 미국의 원유 수출 봉쇄 조치로 부족해진 정부 재정을 메우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 12일 연설에서 “올해 정부 부채가 450억달러(약 54조원)인 연간 정부 예산의 3분의 2 수준에 달할 것”이라며 “정부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5월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가 이란과 맺었던 이란 핵협정(JCPOA)을 탈퇴하고 11월부터 이란산 석유 수출을 봉쇄하는 제재를 발동했다. 여기에 이란 정부가 핵 개발 활동 확대로 응수하면서 제재 강도가 더욱 강해졌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 최근 원유 수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상반기 세계 7위 수준인 250만배럴의 하루 원유 수출량은 현재 5분의 1가량인 50만배럴(세계 25위)로 줄었다.

국가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유 수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이란 경제는 크게 침체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의 경제성장률이 -9.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6년 12.5%를 기록했던 이란 성장률은 이후 매년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4.8%를 나타냈다.

이란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이란의 물가 상승률은 매월 전년 동기 대비 40%를 넘나드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9월 기준 이란의 공식 실업률은 10.5%지만 외신들은 실제론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중앙은행이 고시하는 달러 대비 리알화 환율은 달러당 약 4만2000리알이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비공식 환율은 현재 12만리알 안팎이다. 지난해 초와 비교하면 리알화 가치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휘발유값 인상에 반대해 시작된 시위는 로하니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번지고 있다. 로하니 정권이 미국과의 협상에 실패해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것에 이란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헤란의 한 시민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정권은 ‘희망의 정부’를 자임해왔지만 과거 어느 정권도 이번만큼 실망스러운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