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는 ‘그들만의 리그’다. 투자자(49인 이하)와 운용사 모두 스스로 책임지는 게 원칙이다. 금융당국이 공모펀드와 달리 각종 규제를 면제해주는 이유다. 금융위원회는 혁신성장의 자금줄로 사모펀드를 밀었다.

1조5000억원대 자금이 묶인 라임자산운용 펀드는 통상의 사모펀드와 달랐다. 기형적인 모자(母子)펀드 구조를 활용해 은행과 증권사 지점에서 공모펀드처럼 팔렸다. 최소 투자금이 1억원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사모펀드로는 애초 불가능한 ‘폰지(금융 다단계 사기) 구조’가 가능했던 이유다. 금융당국은 라임 사태가 곪아터질 때까지 눈치도 채지 못했다. 지난 2년 동안 조기경보체계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라임사태가 곪아 터진 데는 초기 대응을 못한 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앞줄 가운데),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왼쪽),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오른쪽) 등이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라임사태가 곪아 터진 데는 초기 대응을 못한 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앞줄 가운데),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왼쪽),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오른쪽) 등이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시장에선 ‘시한폭탄’ 감지했지만…

시장에선 지난해 3월 ‘라임 스캔들’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라임 펀드가 400억원을 투자했던 코스닥 게임업체인 파티게임즈가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을 때였다. 라임운용은 대형 증권사들을 통해 파티게임즈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장외업체로 넘겨 손실을 회피했다. 한 헤지펀드 대표는 “수상한 메자닌 거래가 나오기 시작하자 라임 운용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이 업계 전반에 퍼졌다”며 “지난해 말부터 모자펀드를 내세워 무섭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다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팔짱만 끼고 있었다. 금융위원회는 시장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헤지펀드 육성 방안을 잇달아 내놨고, 금융감독원은 시장에서의 악용 소지를 감지하지 못했다.

라임 펀드가 투자자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점도 당국은 간파하지 못했다. 환매가 중단된 라임 자펀드는 환매가 자유로운 개방형 펀드와 만기가 짧은 폐쇄형 펀드로 팔렸는데 모펀드가 같다. 편입 자산이 같은데 판매 형태가 달라 문제가 발생하면 형평성에 어긋나게 된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컴플라이언스본부장은 “모자펀드 구조도 기형적이지만 모펀드에 투자하는 자펀드를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따로 팔았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기본적인 감독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섣부른 정책을 남발했다. 헤지펀드 개인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춘 게 대표적이다. 국내 펀드 판매가 대부분 은행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알면서도 가입 문턱을 확 낮춰 폰지 구조를 가능하게 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초 코스닥 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세제 혜택을 주는 코스닥벤처펀드를 출범시킨 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헤지펀드의 과도한 코스닥 전환사채(CB) 투자를 부추기면서 라임 사태에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헤지펀드 운용사가 수년 만에 10여 개에서 200여 개로 급증하면서 당국이 운용사별로 운용 실태 등을 점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다”며 “금융위가 헤지펀드 육성 정책을 펴고 있어 자칫 검사를 나갔다가 찬물을 끼얹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고 말했다.
신종 금융거래에 구멍 뚫린 감독당국…'라임 사태' 눈치도 못챘다
당국 용인 아래 라임 따라하기 경쟁

라임이 올해 우리은행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시장에선 ‘금융당국이 라임 방식을 용인했다’는 인식이 퍼졌다. 운용사들은 앞다퉈 라임 성장전략을 벤치마크하고, 판매사들은 경쟁적으로 라임 펀드 판매에 열을 올렸다. 라임과 장외파생거래로 ‘돈방석’에 앉은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을 따라 델타원솔루션팀을 신설하는 증권사가 잇따랐다. 한 증권사 임원은 “증권사가 라임과 맺은 파생계약은 비유동성 자산을 토대로 하고 있어 편법 소지가 다분하고 위험한데도 경쟁사가 거액의 수수료를 벌고 있어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복잡한 구조의 파생 거래에도 무방비였다. KB증권이 라임 모자펀드에 지원한 변종 자전거래가 대표적이다. 판매사들이 라임운용에서 받은 펀드 편입자산 자료를 보면, 라임 모펀드 플루토(9000억원대 환매 중단)는 포트코리아자산운용 펀드에 2658억원을 투자했다. 라움자산운용 펀드 투자금액은 1096억원에 이른다. 포트코리아 펀드는 라임 플루토 펀드 투자금을 다시 라임의 또 다른 모펀드 테티스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라임 플루토→포트코리아 런앤히트→라임 테티스’로 이어지는 일종의 자전거래다. 이를 지원한 게 KB증권 델타원솔루션팀이다.

KB증권은 비유동성 자산인 코스닥 CB 등을 담보로 인정해 총수익스와프(TRS) 거래를 통해 1조원 안팎의 유동성(대출)을 공급해왔다. 금융당국은 최근 KB증권 종합검사에서 델타원솔루션팀이 라임 비중을 대거 줄이라는 내부 리스크관리팀 지적을 이행하기 위해 이 같은 자전거래를 설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라임 사태는 환매 중단 기간을 예단할 수 없어 파장은 상당히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라임 사태는 사모펀드 활성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이라며 “철저히 조사하고 잘못은 엄벌하되 사모시장 활성화 정책 방향은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형/오형주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