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길, 한미훈련 등 비난하며 "우리 선제조치 화답해야 다음단계 비핵화 논의"
외무성 "생존·발전권 저해정책 철회해야"…'포스트 하노이' 협상 강공으로 시작
北, 美에 공넘기며 '적대정책 철회' 先조치 요구…논의 문턱높여(종합)
북한이 7개월만에 열린 미국과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또다시 '결렬'을 선언하고 미국에 공을 넘겼다.

북한은 체제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 문제에 대한 미국의 '실제적' 조치를 비핵화 논의의 선행 조건으로 내걸며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보다 사실상 더욱 강경한 협상 태도를 보였다.

북미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5일(현지시간) 스톡홀름 협상 결렬 후 성명에서 "핵 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 발사 중지, 북부 핵 시험장의 폐기, 미군 유골 송환과 같이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치들과 신뢰 구축 조치들에 미국이 성의 있게 화답하면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들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지난해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북한이 선제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치다.

6·12 북미정상회담 개최 이전에 한 행동으로, 북미간 합의에 따른 것이 아닌 북한의 일방적 조치인 셈이다.

이런 자신들의 선(先)행동에 미국이 상응하는 조처를 해야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의 교환을 제안했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때보다 일면 후퇴한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협상 종료 19시간여 만에 북한이 내놓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미국의 선제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다 분명히 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이번과 같은 역스러운(역겨운) 협상을 할 의욕이 없다"고 못박았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내세워 '포스트 하노이' 협상판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북한이 초기부터 강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했다가 미국에게 거부당한 하노이 회담의 실책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국은 아마도 하노이 회담이 끝난 곳에서 시작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반면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이 끝난 지점에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따르면 북한의 대미 요구는 "우리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리 인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조치를 철회하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생존권'은 체제안전 보장, '발전권'은 대북제재 완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 대사는 회견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한반도 주변 '전쟁장비' 반입, 15차례에 걸친 미국의 대북제재 발동 등을 비난했는데, 미국이 취해야 할 조치를 우회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실무협상을 앞두고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30 판문점 회동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확약'했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8월 진행된 한미연합지휘소훈련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실무협상 일정을 미루기도 했다.

개별 훈련의 일시적 축소 또는 연기를 넘어, 훈련 전반을 지속해서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협상 국면에서 대북 추가제재를 가하고,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F-35A 등 첨단무기의 남한 내 반입을 지속하는 것에도 거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만 영변 폐기 플러스 알파(+α)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도 +α를 요구하고 있다"며 "(북한의) +α는 결국 제재와 한미연합훈련"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에 '협상을 중단하고 연말까지 좀 더 숙고'할 것을 요청한 것은 자신들은 이런 입장에서 당분간 물러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이 이번 협상에서 갖고 나온 입장이 향후에도 지속할 기본 스탠스인지, 아니면 첫 담판에서 '최대치'를 요구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전술인지는 불분명하다.

북한이 미국에 '연말' 시한을 제시한 것은 대화로 문제를 풀 여지를 남겨뒀다는 메시지이기도 한 만큼 추가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의 행동을 "미국을 강하게 압박해 자기들 요구를 관철하려는 협상 전술", "판 흔들기"라고 분석했다.

다만 스웨덴이 제안한 '2주 내 협상 재개'에 대해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전혀 무근거한 말"이라고 일축하고, "(대화) 시한부는 올해 말"이라고 못박은 만큼 조기에 협상에 다시 응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