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우디 사태, 脫원전 철회 기회다
지난 14일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테러 피습 직후 국제 원유시장이 급등락해 우려를 낳았다. 하나의 사건·사고로 인한 공급 차질로는 사상 최대(사우디 공급 능력의 절반)였던 탓에 급등하던 국제 유가는 이제 10%대 상승에 조금 못 미치는 배럴당 60달러 안팎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사태 직후 거래는 20% 이상 급등한 가격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사우디와 미국의 전략비축유 방출, 설비 긴급 복구 등에 따라 곧 안정됐다. 급습 배후 규명 등 불안 요소는 여전하지만 이제는 전쟁보다 평화적 해결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 석유 수요 감소가 본격화하는 ‘에너지 전환’ 시대의 특성도 반영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 따르면 글로벌 석유 수요는 2025년께부터 감소할 전망이다. 예전과 달리 시장 외적 요인에 의한 유가 급등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이유다. 당분간 배럴당 75달러가 이론적 고점이라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대표적 에너지안보 취약국가인 한국은 안도할 때가 아니다. 에너지발(發) 지정학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어서다. 지난 몇 년간 미국 우선주의, 미·중 무역전쟁 등 보호무역주의 영향으로 인해 에너지시장의 불확실성은 누적돼왔다. 그리고 이번 사우디 사태로 미국의 세계 질서 주도에 도전하는 중국, 러시아, 일부 아랍 국가의 에너지 취약점이 많이 노출됐다. 내년에 세계 1위 산유국이자 에너지 완전 자립국이 될 미국은 극단적 무력충돌과 소모적 외교활동 사이의 중간 전략으로 ‘에너지 전쟁’을 선택할 여건을 갖췄다. 복잡한 상품 무역전쟁을 단순 명료한 에너지 전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러시아를 포함한 산유국(OPEC+)의 결속체제를 지탱해온 사우디의 전략 때문에 그 실행이 미뤄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우디는 미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선택할 것 같다. 그러면 ‘산유국 결속’과 ‘미국의 에너지 자립’이란 두 개 요인이 상호 견제하는 가운데 유지돼온 국제 석유가격 결정구조는 붕괴된다. 이제 사우디의 선택 전략이 결정적인 제3요인이 된다. 결국 석유시장은 커다란 구조변화에 돌입할 것 같다. 에너지 지정학 주도권 확보를 위한 연대구조가 관심의 초점이다. 가격 불안정성은 핵심 문제가 아니다. 예상되는 연대구조에서 소외된 수입국의 부담 증가는 불가피하다.

한국의 에너지 전략은 기민해야 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사우디 에너지 개혁정책에 기여하며 한·미·사우디 삼각 에너지 연대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사우디의 에너지 개혁에 기여해 미·사우디 연대 구축에 도움을 줘야 한다. 사우디는 원유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정유·석유화학 투자 증대, 원전과 대체에너지 도입을 적극 추진했는데 이번 사태로 일부 난관이 예상된다.

원전 건설을 포함한 모든 사우디 에너지 개혁과제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최근 우리 신형 원전(1400만㎾급)이 미국 원자력규제기관의 안전설계인증을 받았다. 글로벌 수출면허를 받은 셈이다. 미국, 프랑스, 일본 원전기업 모두 경영애로를 겪고 있다. 자칫 러시아, 중국이 세계 원전시장을 싹쓸이할 수 있다. 이는 서방 세계의 안보에도 장애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참에 탈(脫)원전 정책을 전면 수정해 한·미·사우디 전략 연대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또 미국산 석유·가스 도입을 확대해 전통적 한·미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독자적인 동북아시아 시장 구조를 형성하면서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한국에 불리한 원유 수입가격 구조를 깨뜨릴 수 있다. 이달 초 기한 만료된 국내 유류세 경감조치를 복원해 미래 에너지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도 좋다. 민생 부담의 직접적 경감은 가장 효율적인 복지대책이자 성장잠재력 제고 대책이다. 세계 에너지시장 구조변화를 적극 활용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할 기회를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