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면 공개한 내용이 진짜라도 처벌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한번 강하게 제기됐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개최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심포지엄’에서다. 그동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선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에서 폐지 논쟁이 이뤄져 왔다. 최근 성폭력 피해자들이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행동을 했다가 가해자에게 명예훼손으로 피소를 당하는 사례가 부각되면서 폐지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달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심포지엄.  /대한변협 제공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달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심포지엄. /대한변협 제공
“진실을 말하는 입까지 틀어막아서야”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실을 말하는 입까지 틀어막는 것은 ‘명예보호’라는 명목으로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형법에서는 허위사실뿐만 아니라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까지 처벌한다. 사실로 명예를 훼손(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하면 허위사실(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형량이 낮고 공공의 이익에 관한 행위였다면 위법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김 교수는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를 본 시민들은 엄격한 자기검열 장치를 작동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의 입까지 틀어막는 것은 표현의 자유 과도한 제한"
성폭력범죄 피해자들이 ‘미투’를 했을 때 명예훼손 피의자가 되면서 ‘2차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크다. 토론자로 나선 손지원 사단법인 오픈넷 변호사는 “성폭력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초기에 진화하는 수단으로 명예훼손 고소를 사용하고 있다”며 “미투 외에도 기업의 내부 비리, 직장 상사의 갑질, 권력자의 부정행위 등을 고발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다수가 겪고 있는 폐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학교수의 제자 성추행이나 산후조리원의 환불 거부 사실 등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지 않는다.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받도록 한다. 유엔 인권이사회 등 다수 국제인권기구는 한국 정부에 사실을 공개했을 때는 형법으로 다스리지 말도록 권고해 왔다.
"진실의 입까지 틀어막는 것은 표현의 자유 과도한 제한"
“사실이면 뭐든 말해도 되는가”

토론회에서는 반론도 나왔다. 김성천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인식 탓에 비난받을 행동이 아닌데도 사실이 밝혀졌을 때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되는 현안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애 같은 성적 정체성이나 이혼·사생아 등 가족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사실이면 무엇이든 말해도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이 또한 무제한으로 보장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정서와 인터넷 이용률이 높다는 점을 들어 형법으로는 아니지만 온라인을 통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법 70조)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범죄행위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손형섭 경성대 교수도 “개인에 대한 인격적 공격이 쉬운 미디어 환경에 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 모두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가치인 만큼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김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폐지와 동시에 사생활 침해와 관련된 처벌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