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EU 디지털세, 반길 것만은 아니다
최근 프랑스 의회는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을 겨냥한 디지털세 도입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대해 관세보복 조치를 취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달엔 영국도 디지털세 추진을 천명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럽의 디지털세 도입은 한시적 조치라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디지털 경제의 과세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디지털 경제가 발달한 미국 기업을 상대로 적절한 과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OECD가 중심이 돼 논의하는 방안이 100여 년간 유지해온 국제조세 원칙의 근간을 바꾸는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정된 물리적 사업장이 있어야 과세할 수 있다는 원칙부터 변화가 예상된다. 물리적 실체가 없는 사업장도 매출과 소비자 수 등 ‘중요한 경제적 실재’가 충족되면 세금을 물리자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방안이 현실화되면 프랑스 안에 구글 서버 등 사업장이 없어도 과세할 수 있게 된다.

이전가격 과세를 강화하는 대책도 검토 중이다. 이전가격은 관계법인끼리 원재료·제품 등을 공급할 때 적용되는 가격이다. 이전가격 과세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던 ‘정상거래 원칙’의 일부를 수정해 경우에 따라서는 ‘공식에 의한 접근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대안이 거론된다. 이전가격 조작 판단에서 과세 관청의 재량권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변화는 한국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국 내 다국적 IT기업에 대한 과세가 쉬워져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더 불리할 것이다. 국제조세 기준 개정의 핵심은 시장 소재지국의 과세권을 증대하자는 것이다. 내수시장이 큰 국가는 과세권이 확대되지만 내수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 같은 나라는 과세권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수출 기업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경우 국내 기업들이 IT 업종 여부와 상관없이 해외에 지점이나 자회사를 설치하지 않았더라도 소재지국에 법인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세계 각국의 공격적·자의적 과세가 더 늘고, 조세분쟁 역시 현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조세 체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OECD 논의에 적극 참여해 최대한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국제적 과세기준이 시장 소재지국에 과도한 과세권을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이다. 이때 우리처럼 연구개발(R&D) 투자를 많이 하지만 내수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 예컨대 스웨덴 덴마크 싱가포르 네덜란드 스위스 같은 국가와 연대해 조직적으로 협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