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장년층이 어린 시절을 보낸 1970년대만 해도 보리밥에 김치로 끼니를 때우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밥그릇에 쌀 비중이 커졌을 때도 어쨌든 밥상을 주로 채운 건 곡물과 채소였다. 그러던 것이 점차 살림살이가 풍요로워지고 육류 소비가 증가하면서 농산물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배를 주로 채우는 역할은 육류에 양보하고 음식의 맛을 내는 역할이 훨씬 커진 것이다.

끼니로 먹던 쌀·고구마 지고, 음식 맛 내는 양파·마늘 뜬다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주요 농작물 생산 변화 추이’에는 이런 변화가 고스란히 담겼다. 1980년부터 2018년까지 주요 17개 작물의 생산량과 재배 면적 등을 분석한 결과 과거 주식이던 끼니 작물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겉보리 생산량은 이 기간 연평균 6.0%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쌀보리(-5.6%), 고구마(-3.3%), 맥주보리(-3.2%) 등이 뒤를 이었다. 쌀 생산량의 연평균 증감률은 0.2%였다. 하지만 최근 10년(2008~2018년)으로 좁혀 보면 2.2% 감소해 시대의 변화를 피하지 못했다.

경작지에서도 이런 흐름이 잘 드러난다. 1980년만 해도 겉보리와 쌀보리 재배 면적은 29만7000㏊에 이르렀다. 서울 면적(6만㏊)의 5배 규모다. 하지만 지난해엔 3만7000㏊로 서울 면적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쌀과 보리를 합친 논 면적도 비슷한 추세다. 1980년 130만7000㏊에서 지난해 84만4000㏊로 35.4% 감소했다.

과거 쌀과 보리, 고구마 등이 담당하던 열량 공급 역할은 이제 육류가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3대 육류의 1인당 소비량은 1998년 28.2㎏에서 지난해 51.8㎏으로 급증했다. 반면 쌀, 보리, 옥수수 등 7대 곡류는 같은 기간 183.9㎏에서 137.0㎏으로 줄었다.

모든 농산물이 쌀, 보리처럼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양파, 마늘 등 ‘미식 작물’ 생산량은 늘고 있다. 양파 생산량은 1980~2018년 연평균 4.6% 늘어 17개 주요 작물 중 증가폭이 가장 컸다. 마늘 생산도 0.7% 늘었다.

샐러드 등 웰빙식이 각광받으면서 과일 수요도 뛰고 있다. 감귤(3.6%), 복숭아(2.3%), 사과(0.4%) 등 대부분 과일 생산량이 증가했다.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듯 밭 면적은 1980년 88만9000㏊에서 2010년 73만1000㏊로 줄었다가 지난해 75만1000㏊로 다시 늘어나고 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