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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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2월 서울 소공동에 롯데면세점이 처음 문을 열었다. ‘기념품 가게’ 수준이던 당시 다른 면세점들과 달랐다. 백화점처럼 브랜드별로 매장이 있었고 인테리어도 고급이었다. 이름도 ‘롯데면세백화점’으로 붙였다.

롯데면세점은 이후에도 늘 ‘다른 길’을 갔다. 기존 면세점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분야에 도전했다. 담배, 술 위주의 면세점 영업 틀에서 벗어났다. 해외 명품과 보석, 화장품으로 확장했다.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세계 3대 명품이 면세점에 전부 들어간 곳도 롯데가 세계 최초다.

롯데면세점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2년 1월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7개국에서 12개 해외 매장을 운영 중이다. 마케팅은 다른 기업과 차원이 달랐다. 한류 스타 수십 명을 한꺼번에 모델로 기용해 드라마를 찍고 콘서트를 했다.

롯데면세점은 내년 창립 40년을 맞는다. 이를 계기로 한 단계 도약을 꿈꾼다. 세계 1위 면세점이다.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에서 세계 1등 기업은 아직 한국에 없다.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는 “3년 안에 글로벌 1등 면세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격호의 특명 “홍콩 가는 관광객 유치하라”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은 면세점 개관을 앞둔 1979년 임원들에게 미션을 내줬다. “홍콩으로 쇼핑 가는 외국인 관광객을 돌려세울 만한 유명 명품을 유치하라”는 것이었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샤넬 등 3대 명품 유치가 특명으로 떨어졌다. 내부에선 ‘불가능한 미션’이란 말이 나왔다. 콧대 높은 이들 명품이 면세점에 입점한 선례는 없었다.

3대 명품 유치는 신영자 당시 롯데면세점 부사장이 주도했다. 신 명예회장의 장녀인 그는 1981년 전담 팀을 구성해 루이비통부터 공략했다. 프랑스 본사가 아닌, 홍콩을 통한 ‘우회전략’을 썼다. “루이비통이 향후 한국에 진출하면 도심에 있는 롯데면세점이 최적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롯데호텔과 연계하면 기대 이상의 매출을 거둘 수 있다고도 했다. 설득은 통했다. 루이비통은 1984년 면세점 첫 매장을 롯데에 내기로 했다.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이듬해인 1985년 에르메스, 1986년 샤넬도 롯데에 매장을 열었다.

까르띠에 티파니 불가리 등 글로벌 주얼리 브랜드 유치를 주도한 것도 신 부사장이었다. 그는 1990년 직원 두 명을 선발해 미국보석학회에 연수를 보내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1991년 10월 티파니 매장을 소공점과 잠실점 두 곳에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였다.

2000년대 들어 롯데면세점은 화장품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00년 인천공항 개항을 앞두고 롯데는 화장품 특화 매장을 구상했다. 면세점들이 꺼려 했던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해외 명품과 주얼리 브랜드 유치 경험을 바탕으로 랑콤 에스티로더 시슬리 샤넬 등 글로벌 브랜드를 줄줄이 인천공항에 들여왔다.

이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인천공항 화장품 매장 운영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2년 8월 샤넬 랑콤 에스티로더 시슬리 등 4대 화장품 브랜드 월 매출이 100만달러를 넘겼다. 이후 3년 뒤에는 에스케이투까지 합쳐 5대 브랜드 월 매출이 200만달러로 뛰었다. 누구도 예상 못한 ‘대박’이 났다.

이는 세계 면세산업 판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면세점이 기존에는 잘 판매하지 않던 화장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게 됐다. 현재 화장품은 세계 면세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이다.

○해외 7개국, 12개 매장 보유

롯데면세점은 국내 면세점 최초로 해외 시장을 공략했다. 글로벌 시장 공략은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이 적극 지원했다.

2012년 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 첫 매장을 냈다. 이후 미국 괌 공항점, 일본 간사이 공항점과 도쿄 긴자점, 베트남 다낭 공항점, 태국 방콕 시내점 등으로 빠르게 확장했다. 올초에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총 5개 면세점을 한꺼번에 열었다. 롯데면세점 해외 매장은 현재 7개국, 12개 매장으로 늘었다.

해외 매장들은 점차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긴자점은 작년에만 약 9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2016년 출점 첫해 200억원에서 2년 만에 4.5배로 뛰었다. ‘현지화’가 매출 성장 비결이다.

일본에선 시내면세점이 한국처럼 활성화돼 있지 않다. 면세점은 공항에 가야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대신 일본 도심에는 소비세만 환급받는 ‘사후면세점’이 많다. 롯데면세점은 일본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관세, 소비세가 모두 면제되는 면세점과 소비세만 환급되는 사후면세점을 한 곳에서 운영하는 전략을 짰다. 시내면세점에 생소한 일본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전략은 들어맞았다. 사후면세점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면세점으로 연결됐다. 면세점의 세금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베트남도 롯데면세점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해외 시장 중 하나다. 현지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2017년 다낭 공항에 이어 작년 냐쨩의 깜란 공항점까지 진출했다. 이들 매장은 이례적으로 사업 첫해부터 흑자를 냈다. 술, 담배 위주인 베트남 현지 다른 면세점과 다르게 화장품과 향수 브랜드를 대거 유치한 게 차별화 포인트였다. 특히 베트남을 찾는 중국인, 러시아 여행객이 구매를 많이 했다. 롯데면세점은 올 하반기 베트남 내 추가 출점을 계획 중이다. 이달 중 하노이 공항점을, 다음달에는 다낭 시내점을 열 예정이다.

롯데면세점은 국내 면세점 중 최초로 오세아니아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해 호주 멜버른 시내점, 브리즈번점, 캔버라점, 다윈점과 뉴질랜드 웰링턴 공항점 등 다섯 곳을 인수한 뒤 올초 문을 열었다. 올해 이들 5개 면세점의 매출 목표는 2000억원에 이른다. 이들 매장을 포함해 내년 해외 매출 목표를 1조원으로 잡고 있다.

○3년 내 듀프리 제치고 글로벌 1등이 목표

해외 면세점 확장 등으로 롯데면세점은 작년 약 7조50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2014년 약 4조원, 2016년 약 6조원 등 급격히 매출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면세점 순위는 매출 기준 2위까지 상승했다. 1위 스위스 듀프리와 격차가 매년 좁혀지고 있어 3년 이내 1위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롯데면세점은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올 1월 취임 후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진출해 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을 기반으로 주변국으로 더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최근 아시아 최대 면세박람회인 싱가포르 ‘TFWA’에 참석하며 해외 확장 가능성을 타진했다. 지난달에는 베트남 현지 시장도 둘러봤다.

이 대표는 “해외 사업이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며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면세 사업자로 도약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