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일본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열린 ‘대한변협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최봉태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16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일본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열린 ‘대한변협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최봉태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일제 강제징용 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한국인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압류한 한국 내 자산을 강제로 매각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한·일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대리인단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협상시한(15일)을 넘겨서도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며 강제집행을 공식화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미쓰비시 자산을 매각해 피해가 생기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소송단 "미쓰비시 압류자산 곧 현금화"…日 외상 "자산 팔면 보복"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추가소송 19건

징용 피해자 대리인단은 16일 “이른 시일 안에 압류해 놓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에 대한 매각명령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미쓰비시는 15일 협상시한까지 아무런 의사전달 노력도,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대화를 통해 합리적 방법을 찾고자 했던 노력이 거듭 무산된 데 대해 깊은 유감”이라고 전했다.

대리인단은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대부분이 90세를 넘긴 고령인 만큼 법적 절차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강조한다. 대리인단은 “미쓰비시가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올해만 해도 세 명의 원고가 유명을 달리했고 다른 원고들도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대법원 판결확정 후 반 년이 넘도록 협의를 요청했지만 (미쓰비시로부터 뭔가를 기대하기 어려워) 이제는 조속히 매각명령신청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로 추가 소송을 제기한 원고 가운데 한 명인 이영숙 할머니(90)는 지난 1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등 경제보복에도 인권 문제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대리인단의 주장이다. 이날 서울 대한변협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고 측 대리를 맡은 김세은 변호사는 “우리는 법원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할 뿐”이라며 “일본 정부의 조치에 영향받지 않고 정해진 절차대로, 피해 당사자들 의사에 맞춰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 전국 각급 법원에선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추가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1심 소송만 현재 19건으로 확인됐다. 피소된 일본 기업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미쓰비시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 일본코크스공업, 후지코시, 니시마쓰건설 등이다. 원고 1인당 청구 금액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1억원까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공동 대리인단을 구성해 원고로 참여할 피해자를 계속 모집 중이다.

日 “자산 팔면 보복할 것”

고노 외무상은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자산을 매각해 피해가 발생하면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고노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이 매각될 경우를 염두에 두고 “만에 하나 일본 기업에 피해가 미치는 일이 있으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일본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게) 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지한파 학자로 평가받는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압류자산 현금화를 멈추는 것은 일본 정부가 요구하는 마지노선”이라며 “현금화 조치가 취해지면 아베 신조 정부가 물러설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에 나선 것은 경고이기도 하지만 징용재판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이기도 하다”며 “한국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혁욱 니혼대 경제학부 교수도 “일본은 자국 기업의 재산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하면 한국에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신연수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