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녹스(회장 라제건·사장 라영환)는 텐트와 아웃도어용 경량의자 등을 생산하는 업체다. 인천 가좌동에 본사가 있는 이 회사는 서울 한남동에 매장을 열었다.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하던 텐트 업체들은 2000년 전후 상당수 사라졌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을 생산기지로 둔 저가제품에 밀려나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헬리녹스는 다르다. 이 회사의 무대는 유럽 일본 미국 등이다. 글로벌시장에서 헬리녹스는 명품 대접을 받는다. 미국의 최대 아웃도어용품 유통체인인 REI,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일본 몽벨 매장 등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제품을 판매하겠다면서 해외 아웃도어용품 업체들의 상담이 줄을 잇고 있을 정도다.
라제건 헬리녹스 회장이 서울 한남동 전시장에서 차세대 텐트 개발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라제건 헬리녹스 회장이 서울 한남동 전시장에서 차세대 텐트 개발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매년 10% 성장하고 있는 비결은

이 회사의 지난 회계연도(작년 6월 말 결산기준) 매출은 280억원. 이 중 수출로 벌어들인 게 80%가 넘는다. 2013년 창업 이후 매년 매출이 10% 성장하고 있다.

지속 성장의 비결은 뭘까. 가격이 아닌, 제품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텐트와 아웃도어용 소품의 핵심 소재는 폴이다. 이 회사는 일반 금속제품 대신 혁신적인 제품을 사용한다. 헬리녹스의 관계사이자 라제건 회장이 설립한 동아알루미늄의 제품을 쓴다. 수백 번의 테스트 끝에 개발된 알루미늄합금폴(TH72M)은 항공기 소재에 버금갈 정도로 가볍고 단단하다. 무겁고 중후한 텐트가 가볍고 견고한 텐트로 탈바꿈하게 됐다. 이 폴을 사용한 경량의자는 무게가 870g에 불과하지만 지탱할 수 있는 무게는 145㎏에 이른다.

디자인에도 세심한 공을 들였다. 이 회사가 일본 디자이너와 협업해 한정판으로 제작한 경량의자는 판매가 20만원이다. 고가에도 순식간에 완판돼 일본옥션에서 1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 회사의 핵심 역량은 ‘5년 앞을 내다보는 연구개발’과 ‘세계시장의 흐름을 간파한 안목’으로 요약된다. 라 회장은 “좌식문화가 입식문화로 바뀜에 따라 대형 텐트와 아웃도어용 초경량의자 테이블 및 침대를 속속 선보였다”며 “텐트 안에서 서서 움직이고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터널형 텐트도 개발 중이다. 기존의 터널텐트는 자립이 불가능해 터널의 양쪽 끝을 질긴 끈으로 연장해 바닥에 고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제품은 기존 폴대만으로 텐트를 견고하게 세울 수 있도록 설계했다.

라제건 헬리녹스 회장이 서울 한남동 전시장에서 차세대 텐트 개발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라제건 헬리녹스 회장이 서울 한남동 전시장에서 차세대 텐트 개발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글로벌 명품회사도 제품 의뢰

이 회사는 최근 세계적인 명품 패션업체로부터 새로운 텐트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수출 조건을 놓고 막바지 협의 중이다.

라 회장은 “비밀유지조항 때문에 업체명을 밝힐 순 없지만 세계적인 명품업체”라며 “프레임과 패턴은 우리가 맡고 해당 명품업체는 천의 선택과 디자인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협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헬리녹스는 동아알루미늄과의 협업을 통해 프레임,패턴, 디자인 등 모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일관생산 시스템을 갖췄다. 동아알루미늄은 아웃도어용품을 테스트할 수 있는 풍동시험장을 구비하고 있다. 최대 시속 170㎞의 강력한 태풍급 바람을 일으키는 장치다.

시장의 트렌드를 읽는 라 회장의 안목은 헬리녹스의 가장 큰 자산이다. 30년 넘게 이 분야에 종사해온 라 회장은 미국 일본 유럽의 소비자 취향이 어떤지, 각국의 텐트업체가 어떤 제품 개발에 나서는지 꿰고 있다고 한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제품을 한 걸음 앞서 내놓는 것도 항상 소비자와 시장 트렌드 변화를 놓치지 않아서 가능하다. 라 회장은 “사양산업과 첨단산업의 구분은 명확한 게 아니다”며 “시장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혁신을 입히면 어떤 분야에서든지 히트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오래 숙성시켜야 장맛이 좋듯 조급하게 승부를 걸 생각을 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한 분야에 정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