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3단형 우주발사체 '누리호' 이후
한국이 우주 개발에 착수한 지 올해로 만 30년이 됐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한국항공우주연구소(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를 세운 이후 한국은 우주기술 개발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고 투자해 왔다. 특히 아리랑 위성과 천리안 위성 등 각종 인공위성 개발 및 발사 과정에서 100% 임무성공률을 기록한 것은 세계 인공위성 개발사에 흔치 않은 일이다. 물론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작년 말 75t 액체엔진 시험발사체를 성공적으로 발사함으로써 2021년으로 다가온 3단형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결과들에 대해 ‘이 정도면 잘했다’는 칭찬도 있고, ‘좀 더 잘했어야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큰 흐름에서 보면 우주 선진국들보다 30년 늦게 우주기술 개발에 나선 한국이 이들 우주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 요소품 개발 등 산업체가 요구하는 기술 개발보다 인공위성, 우주발사체, 우주발사장 등 최종 결과물 중심의 시스템 설계기술 확보에 초점을 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주산업의 육성은 다소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좀 달라져야 한다. 우주 개발의 방향을 혁신해야 하고 투자 규모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간 미흡했던 국제협력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우주기술 개발의 혁신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음을 고려했으면 한다. 우선, 정부출연연구소와 우주산업체들의 역할을 재정립하되 상호 협력해 시너지를 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재정립 과정에서 연구소와 산업체 모두가 피해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점진적으로 변화를 시도해 보고 효과가 예견될 때는 과감히 속도를 내는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적극적인 국제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세계 우주 개발 활동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제협력으로는 유럽우주기구(ESA: European Space Agency)가 있다. 한국이 속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활발한 우주 개발 활동에도 불구하고 국제협력 활동에서는 미흡한 게 사실이다. 한국이 미국, 중국, 인도, 일본과 함께 또는 이 중 일부 국가와 ESA 같은 국제우주기구를 설립할 수 있다면 일거에 ESA와 대등하거나 ESA를 능가하는 국제우주기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주 개발을 위한 국제우주기구가 중요한 이유는 우주 개발의 협력 차원을 넘어 경제 및 정치적 협력 공동체로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그런 사례다. 1,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철천지원수로 총부리를 겨눴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우주 개발이라는 평화적 공동목표를 위해 손잡고 1975년 ESA를 결성했다. ESA는 우주 개발에 한정된 협력기구지만 회원국 간 상호 신뢰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특정 분야에서 신뢰가 쌓이면서 경제적, 정치적 공동체로 발전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EU다.

우주 협력은 정치와 무관해 보인다는 점에서 문화 교류 또는 체육 교류와 비슷하다. 그러나 우주 협력은 기술 및 산업적 효과는 물론이거니와 성공적으로 추진했을 경우 그 이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한·중·일 세 나라를 보더라도 경제는 상호 의존적이면서 정치·외교·국방 분야에서는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이런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 형성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국가 사이의 신뢰는 한순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특정 분야에서 일정 기간 공동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며 축적해나가야 한다. 이런 분야로는 우주 협력이 최적이다. 우주기구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분히 국제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우주 개발 혁신의 방향으로 국내적으로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역할 재정립 그리고 밖으로는 적극적인 국제협력 추진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감한 우주 예산 증액이 절실하다. 중국과 일본의 우주 예산 규모를 따라가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에서 차지하는 우주 예산 비율만큼은 이들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