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렵질'은 막말일까 아닐까? 정치권 막말의 기준
이후 민 대변인은 또 반박 논평을 냈다. “대통령 비판은 모조리 막말인가. 야당의 정당한 비판을 꼬투리잡고, 막말로 몰아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악의적 시도가 장탄식을 불러일으킨다”고 썼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도 민 대변인을 감쌌다. “아무것이나 막말이라고 하는 그 말이 바로 막말”이라고 했다.
‘천렵’이란 ‘냇물에서 고기잡이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해외 순방을 떠난 대통령을 응원하진 못할 망정 천렵질이라는 단어로 비하하는 게 야당이 기껏 할 수 있는 비판이냐”고 지적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질’은 주로 좋지 않은 행위에 비하하는 뜻을 더할 때 쓴다. 반면 한국당 관계자는 “천렵 자체는 청와대를 견제해야할 의무가 있는 야당 대변인 입장에서 충분히 쓸 수 있는 단어”라고 맞받았다.
‘천렵질 공방’의 배경엔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신경전이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 불거지는 막말은 유권자들의 호감을 가장 쉽고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는 소재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막말의 비판의 소재로 삼아서 ‘막말 정당’ 프레임을 씌우는 게 좋고, 한국당은 여기서 벗어나야한다. 일각에선 최근 일부 의원들의 언행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한국당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천렵질’ 총대를 맨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천렵질이라는 막말인지 아닌지 애매한 단어를 일부러 써서 그간 막말로 비판받아왔던 한국당이 판세 뒤집기에 나선 것 아닌가”라고 했다.
여야 간 자극적인 비판과 말꼬리잡기는 얼마간 이어질 것이란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국회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막말의 기준이라는 게 당이 혼내면 막말이고, 당이 인정하면 막말이 아닌 것”이라며 “황 대표가 민 대변인 감싸기에 나선 이상 자극적인 발언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민 대변인의 글이 막말이 아니냐고 보냐는 질문에 “여러분들이 읽어보시라. 보시면 다 판단할 수 있지 않나”고 했다.
민 대변인은 천렵질 논란 이후인 11일 페이스북에 “나도 피오르 해안 관광하고 싶다”고 적었다. 피요르(빙식곡이 침수해 생긴 좁고 깊은 후미)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관광장소로, 북유럽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을 또 비판한 것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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