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멀지만 함께 가야할 길
경부고속도로에는 아시안하이웨이(AH1)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다. AH1은 일본~한국~북한~중국~베트남~태국~인도~이란~터키를 연결하는 ‘21세기 비단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분단의 장벽을 뚫지 못한 채 미완으로 남아 있다. 필자는 이 표지판을 볼 때면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과 평양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달리는 상상을 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섬 아닌 섬이 됐다. 군사·경제적 강대국인 러시아, 중국, 일본 사이에 있어 지정학적 환경도 좋지 못하고 천연자원도 부족하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고는 하지만, 섬 아닌 섬에서 뻗어나갈 곳 없는 한국 경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북경협은 한국 경제의 탈출구 중 하나다. 우리가 섬나라에서 벗어나 대륙국가가 되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만일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면 이는 우리의 경제영토가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 값싼 노동력과 결합돼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이를 위한 기회를 맞았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남북한의 교류는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렸다. 특히 12월 열린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가 컸다. 남북이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거대한 대륙을 횡단하는 아시안하이웨이가 개척되면 시너지 효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올 들어 미·북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남북교류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륙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행보는 계속돼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경협 핵심인 남북도로 연결은 물류비 절감, 산업단지 개발, 일자리 창출 등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 사안이기에 긴 안목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에 한국도로공사는 북한 도로에 대한 현지 조사와 함께 남북의 설계·시공 기준을 비교·검토하고, 북한의 지형·기후를 고려한 시공방안을 모색하는 등 사전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서울~평양 고속도로 시대를 열기 위해 내년 상반기에 문산~개성 고속도로의 남측 구간인 문산~도라산(11.66㎞)에 대한 실시설계를 끝내고 6월에는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지금의 남북 관계를 보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이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남북 대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대화는 많을수록 좋다. 정부와 국민 모두 격변하는 상황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남북 협력과 번영의 길을 장기적 안목에서 준비해 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