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21)] 글로벌 시대의 사과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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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필자가 회의차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시내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응대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던 웨이터가 그만 접시를 깨뜨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식당 안의 모든 종업원이 90도에 가까운 배꼽인사를 하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서양은 물론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동서양 간에는 사과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 서양인은 “미안하다” 또는 “사과한다”는 말을 하길 꺼린다. 영국 팝가수 엘튼 존의 노래 ‘미안하다는 말은 가장 어려운 말인 것 같아요(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처럼 말이다. 하지만 동양인의 인식은 다르다. 동양사회에서 “미안하다” 또는 “사과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의범절에 속한다. 동양인은 사과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유지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
동양사회 중에서도 일본의 사과 문화는 독특하다. 일본인은 사과 표현을 입에 달고 산다. 정말로 잘못해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식당에서 주문받을 때조차도 “스미마센(미안합니다)”을 외친다. 가벼운 사과, 정중한 사과, 큰 실수로 인한 진심 어린 사과 등 상황에 따라 표현과 인사법이 다르다. 사과 문화가 사회의 행동규범으로 뿌리내린 일본이 왜 침략전쟁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전쟁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는지 불가사의하게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만에도 사과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대만인은 “부하오이쓰(不好意思: 죄송합니다)”를 자주 말한다. 질문할 때도 이 말로 시작하고 선물받은 뒤에도 이 말을 한다. 전문가들은 51년간 계속된 일본의 식민지배와 유교 전통이 오늘날 대만의 사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한다.
동서양 문화 차이 큰 사과 양상
중국은 다르다. 유교 문화의 발원지로 유교가 중국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대만보다는 다소 경직된 사과 문화를 보인다.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고 문화대혁명(1966~1976) 등 정변을 겪은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도 사과는 개인 간 관계뿐 아니라 사회, 기업과 정치에서 조직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다. 최근에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하는 개인 간 사과보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공개사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서양 간 사과에 대한 인식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먼저 법률 문화의 차이를 들 수 있다. 동양에 비해 소송 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사과를 감정 표현보다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행위로 간주하기 쉽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양인들은 자동차 사고나 상해 사건이 발생하고 그 발생 원인이 명백하게 자신에게 있어도 좀처럼 사과하려 들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와 동양의 집단주의 문화의 차이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중요시한다. 책임도 개인이 진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중시하며 공동체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나 이익은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임도 연대책임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났을 때 해당 운수회사의 사장은 말할 것도 없고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책임지고 사임하는 건 이 때문이다.
서양의 사과 인식도 변하고 있어
글로벌 시대에 사과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의 변화와 함께 사과 없이는 역사적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노예 매매, 교황 바오로 2세는 중세시대의 종교재판,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이 뉴질랜드 마오리족에 가한 박해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베트남 방문 당시 양국 간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2001년 2월 9일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 부근에서 미국의 핵잠수함 ‘그린빌’이 일본의 어로 실습선을 침몰시킨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당했다. 그린빌호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지 미군 사령관은 유감만 표명했을 뿐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유가족을 향한 직접적, 개인적인 사과는 일본 문화의 단면일 뿐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태가 악화되자 사고 책임자가 직접 유가족을 방문해 사과함으로써 비로소 해결됐다. 하지만 늦은 사과는 그 효과를 반감시켰다.
수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새로운 법이 제정됐다. 법의 요지는 사과가 자신의 유죄나 잘못을 인정하는 의미로 법정에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이 요지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법적 구속력 없이 사과할 수 있게 됐다. 바야흐로 사과에서도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융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서양 간에는 사과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 서양인은 “미안하다” 또는 “사과한다”는 말을 하길 꺼린다. 영국 팝가수 엘튼 존의 노래 ‘미안하다는 말은 가장 어려운 말인 것 같아요(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처럼 말이다. 하지만 동양인의 인식은 다르다. 동양사회에서 “미안하다” 또는 “사과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의범절에 속한다. 동양인은 사과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유지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
동양사회 중에서도 일본의 사과 문화는 독특하다. 일본인은 사과 표현을 입에 달고 산다. 정말로 잘못해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식당에서 주문받을 때조차도 “스미마센(미안합니다)”을 외친다. 가벼운 사과, 정중한 사과, 큰 실수로 인한 진심 어린 사과 등 상황에 따라 표현과 인사법이 다르다. 사과 문화가 사회의 행동규범으로 뿌리내린 일본이 왜 침략전쟁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전쟁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는지 불가사의하게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만에도 사과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대만인은 “부하오이쓰(不好意思: 죄송합니다)”를 자주 말한다. 질문할 때도 이 말로 시작하고 선물받은 뒤에도 이 말을 한다. 전문가들은 51년간 계속된 일본의 식민지배와 유교 전통이 오늘날 대만의 사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한다.
동서양 문화 차이 큰 사과 양상
중국은 다르다. 유교 문화의 발원지로 유교가 중국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대만보다는 다소 경직된 사과 문화를 보인다.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고 문화대혁명(1966~1976) 등 정변을 겪은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도 사과는 개인 간 관계뿐 아니라 사회, 기업과 정치에서 조직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다. 최근에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하는 개인 간 사과보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공개사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서양 간 사과에 대한 인식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먼저 법률 문화의 차이를 들 수 있다. 동양에 비해 소송 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사과를 감정 표현보다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행위로 간주하기 쉽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양인들은 자동차 사고나 상해 사건이 발생하고 그 발생 원인이 명백하게 자신에게 있어도 좀처럼 사과하려 들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와 동양의 집단주의 문화의 차이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중요시한다. 책임도 개인이 진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중시하며 공동체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나 이익은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임도 연대책임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났을 때 해당 운수회사의 사장은 말할 것도 없고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책임지고 사임하는 건 이 때문이다.
서양의 사과 인식도 변하고 있어
글로벌 시대에 사과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의 변화와 함께 사과 없이는 역사적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노예 매매, 교황 바오로 2세는 중세시대의 종교재판,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이 뉴질랜드 마오리족에 가한 박해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베트남 방문 당시 양국 간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2001년 2월 9일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 부근에서 미국의 핵잠수함 ‘그린빌’이 일본의 어로 실습선을 침몰시킨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당했다. 그린빌호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지 미군 사령관은 유감만 표명했을 뿐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유가족을 향한 직접적, 개인적인 사과는 일본 문화의 단면일 뿐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태가 악화되자 사고 책임자가 직접 유가족을 방문해 사과함으로써 비로소 해결됐다. 하지만 늦은 사과는 그 효과를 반감시켰다.
수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새로운 법이 제정됐다. 법의 요지는 사과가 자신의 유죄나 잘못을 인정하는 의미로 법정에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이 요지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법적 구속력 없이 사과할 수 있게 됐다. 바야흐로 사과에서도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융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